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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빈 고전파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음악의 성인(聖人), 악성으로 불리며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인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베토벤은 음악가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베토벤의 작곡 인생은 열세 살에 작곡한 「드레슬러 주제에 의한 피아노를 위한 9개의 변주곡 C단조」가 최초로 출판되면서이다. 1787년 베토벤은 여행으로 간 빈에서 모차르트를 만나게 되고 그와의 만남으로 음악에 대한 집념은 더욱 커진다. 이후 빈에 정착하고 음악생활을 해나갔으나 1796년과 1800년 사이 점점 청각을 잃는 시련의 시기를 맞는다. 그러나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싹트는 희망과 열정으로 그는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빈은 그에게 특별한 도시이고 이곳 사람들에게도 베토벤은 특별한 위인이다. 베토벤의 인생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음악의 고향인 빈에는 그래서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무척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유서의 집'과 '파스콸라티 하우스'는 베토벤의 영욕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베토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괴로워하던 베토벤은 친구의 권유로 온천 요양을 떠나기 위해 빈의 외곽 시골 하일리겐슈타트로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악화되자 베토벤은 절망하며 두 동생들에게 유서를 쓰기에 이르렀는데 1802년, 베토벤이 유서를 쓴 집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집'이다. 베토벤이 쓴 유서는 동생들에게 보내지지 않았지만 세상에 공개되어 당시 베토벤의 절망적인 심경과 괴로움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후에 베토벤의 유품인 침대 옆 책상서랍에서 부치지 못한 이 유서와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었다).

"나는 귀가 먹었으니 좀더 크게 말하시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극소수의 음악가들만 누린 완벽한 감각을 지녔던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완벽해야 하는 내가 어찌 그런 약점에 대해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내게 더 이상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도, 지적인 대화도, 사고의 교류도 있을 수 없다. …중략… 나는 기꺼이 죽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죽음의 시간이 더 일찍 다가오더라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죽음은 고통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주지 않겠는가. 언제든지 오거라. 나는 용감히 네 앞에 맞설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좌절감, 예술에 대한 열정, 죽음에 대한 초연함, 가족에 대한 사랑 등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엿보이는 유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천재 작곡가도 공포와 좌절, 불안감을 느끼는 약하고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병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창작에 매진하여 처한 상황과는 반대로 낙천적이며 유쾌한 곡을 많이 탄생시켰다. 베토벤은 이 집에서 「교향곡 2번」, 「피아노 소나타 34번, 35번, 30번」의 일부를 완성하였다.

현재 기념관으로 꾸며진 이곳 내부에는 베토벤의 초상화와 유서의 원본, 친필 악보 등 베토벤을 추모하는 많은 전시물들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특히 보청기 등의 소지품들 사이에 놓인 베토벤의 머리카락이 발길을 붙잡는다. 또 수많은 번뇌와 절망감, 삶에 대한 회한이 가득한 그의 유서 원본은 위대한 음악가로서가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파스콸라티 하우스는 베토벤이 1804년부터 1808년까지 그리고 1810년부터 1815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당시 집주인 파스콸라티 남작은 베토벤에게 호의적이어서 항상 5층을 그를 위해 남겨두었다고 한다. 이웃과의 마찰 등으로 빈에서만 80여 차례나 이사를 다녀야 했던 베토벤이지만 이 집에서만큼은 10년을 보냈다고 하니 인연이 무척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교향곡 4번, 5번, 7번, 8번」, 「오페라 피델리오」 등 수많은 명곡이 탄생한 집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 만나는 기념관 안에는 베토벤의 악보와 1804년, 1805년의 베토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베토벤과 관련된 사람들의 초상화와 식기류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눈에 띄는 커다란 전시물은 없지만 베토벤이 오랜 시간 머무르며 명곡을 탄생시킨 역사적 장소로서 이 집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많은 고뇌와 절망의 시간을 보낸 베토벤이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 명곡들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그의 발자취는 빈 곳곳에 남아 있지만 유서를 쓴 집과 불후의 명곡이 탄생한 파스콸라티 하우스만큼은 반드시 들러보도록 하자.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진지하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