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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매년 역사와 문화가 깃든 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단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그 나라, 그 도시의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잔치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제3의 도시 발렌시아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불축제로 유명한 도시다. 발렌시아 불축제는 해마다 3월에 열리는 스페인의 대표 축제 중 하나로 정확한 명칭은 라스 파야스(Las Falles)다. 소몰이 축제(San Fermin), 토마토 축제(La Tomatina)와 더불어 스페인의 3대 축제 중의 하나다.

이 축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500∼600년 전 스페인의 목수들이 자신들을 지켜주는 성인이라고 굳게 믿었던 성 요셉의 날(St. Joseph's Day)을 기리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일터에 세워 놓았던 깃발과 나무인형, 쓰레기를 태우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축제는 매년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계속되는데 이때가 되면 발렌시아는 축제 분위기로 무르익고 도시 곳곳은 일 년 동안 정성들여 만든 다양한 인형들로 가득찬다. 2∼3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인형도 있다고 한다. 이 인형들은 축제 기간 내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아쉽게도 마지막 날인 3월 19일 자정에 모두 불에 태워져 재가 되고 만다.

그러나 모든 인형을 다 태우는 것은 아니고 투표를 통해 1등으로 뽑힌 인형은 불축제박물관에 보존된다. 이는 1934년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불축제를 거치면서 인기 투표에 의해 당당히 살아남은 1위 작품들은 불축제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인형은 물론이고 불축제 사진, 영상자료와 인형 제작기술의 변천사 등 불축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먹고 있는 아이, 고뇌하는 예술가, 스페인 전통 여인의 모습 등 다양한 인형들이 연도별로 전시되어 있다. 초기에 인형은 나무나 짚, 종이 등으로 만들어졌는데 점차 밀랍, 판지, 폴리에스테르, 폴리스티렌 등의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각각의 인형들은 얼굴 표정, 입고 있는 옷 등 모든 것이 너무나 정교해 사람들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1위를 하지 못한 다른 작품들은 불에 타버린다니, 관람객들은 안타까워하지만 문화와 전통의 한 맥락으로 이해하도록 하자.

한쪽에는 인형의 제작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해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다. 얼굴은 얼굴대로, 손과 발은 각각 따로 만들어 합체를 하기도 한다. 복도에는 중세시대 왕비의 모습을 한 여성들의 초상화와 공주 모습의 어린 여자아이의 초상화가 연도별로 전시되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이는 축제에서 왕비와 공주로 선발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은 오랫동안 유명세를 탄다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올 때에는 다음은 또 어떤 작품들이 1위의 영예를 안고 박물관의 한 자리를 차지할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