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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일상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네덜란드 헤이그.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곳은 가슴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도시다. 1905년 일본이 강제 체결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고종 황제가 파견한 특사 세 명의 한(恨)이 깃든 곳이며 특히 이준 열사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순국한 곳이기 때문이다.

을사늑약이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1905년 11월 17일 강압적으로 체결한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일본의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약 체결의 강압성을 비판하는 뜻에서 널리 알려진 을사조약이라는 명칭보다는 을사늑약으로 부른다. 당시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투쟁도 각지에서 일어났는데 민영환, 조병세, 홍만식 등이 죽음으로 항거하였고 민종식, 최익현 등은 의병을 일으켰다.

마침내 고종 황제는 헤이그에서 개최 중인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도움을 얻고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였다. 특사들은 당시 드용호텔(De Jong Hotel, 현 이준열사기념관)에 머물며 을사늑약의 무효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국권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헤이그라는 네덜란드의 자그마한 도시가 만국평화회의의 회의 장소로 선택된 것은 정치적으로 휩쓸리지 않을 중립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이 세계에 알리고자 한 것은 일본인들이 대한제국 황제의 승낙 없이 행동을 취했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황실에 무장병력을 사용했으며 대한제국의 모든 법률과 관습을 무시한 채 그들 마음대로 행동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냉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준 열사는 끝내 자신의 방에서 순국하였다. 이상설 열사 또한 일본의 만행으로 오랫동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렇듯 이준열사기념관은 나라를 위해 힘썼던 세 열사들의 한과 애국심, 나라를 잃은 설움이 곳곳에 배인 역사적인 장소다. 타국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열사들을 추모하고 후손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의 현장을 널리 알리고자 1995년 8월 5일 개관한 이준열사기념관은 당시 국내외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전개 내용과 다양한 정보, 만국평화회의에서의 열사들의 활약상과 자료들을 알차게 전시하고 있다. 또한 열사들을 추모할 수 있는 물품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이준 열사의 이력서와 청원서는 진품으로 그의 방 벽에 걸려 있으니 꼭 살펴보자.

"이 집, 이 계단, 이 마룻바닥, 이 창문 등이 모두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열사 세 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좌절과 절망이 많았지만 희망을 키우며 훗날을 기약했지요. 우리 후손들이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념관을 지키고 있는 관장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다. 유럽에 하나밖에 없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인 이준열사기념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애국 정신을, 세계인들에게는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사적인 장소로 계속 그곳에 있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