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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자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한 듯 안 한 듯 청순하게 예뻐 보이는 화장을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 여자’ 하면 떠올리는 게 바로 잡티 하나 없이 빛나는 피부, 다듬지 않은 듯 일자에 가까운 눈썹이다. 하지만 내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손톱으로 긁힐 듯한 두꺼운 피부 화장에 자줏빛 혹은 보랏빛 입술, 숯검정 눈썹이 기본이었다. 내 이모 세대도 별다르지 않았고, 화장을 안 하면 안 했지 했다 하면 진하고 화려하게 했다. 당시에는 동양적 아름다움이란 게 뭔지 개념이 덜 정립되어, 얼굴은 동양인인데 화장은 서양식으로 했기 때문이다. 화장품 역시 그저 서양 것을 따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동양과 서양은 사고방식만큼이나 미의식에도 차이가 있다.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이는 결혼식이나 파티에 가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서양 사람은 가슴골이든 팔, 다리든 노출을 하며 얼굴을 원래보다 가무잡잡하게 칠하고, 컨실러와 블러셔를 잔뜩 바르고 나타난다. 반면 한국 여자는 단정한 정장풍 옷을 입고, 얼굴을 목보다 하얗게 칠하며 입술을 또렷하게 칠하거나 위 아이라인만 정성껏 그리고 등장한다. 그래서 멀리서 봐도 그 사람의 문화권을 구별할 수 있다.

난 결혼식을 홍콩에서 했는데 유명하다는 호주계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얼굴을 맡겼다. 그녀가 선탠을 가무잡잡하게 한 걸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뜨니 난 흑인이 되어 있었다. 속눈썹은 전혀 길어지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축 처지게 하는 마스카라를 두세 번 대충 발랐으며, 진한 갈색 블러셔와 비닐처럼 번쩍이는 립글로스가 발라져 있었다. 예쁘다고 박수 치는 그녀에게 한국식 신부화장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상황이 이러니 아름다워지기 위한 도구인 화장품도 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