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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대나무로 난간을 꾸민 화원

요약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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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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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회현에서 명동으로 언제 이사를 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의 나이 삼십 대 대부분을 명례방(明禮坊)에서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땅값이 비싸 큰 집을 장만하지 못했던 그는 작은 집의 좁은 땅을 절반으로 딱 잘라 대나무 난간인 죽간(竹欄)을 일렬로 옹기종기 모여 있게 짜놓고 마치 화원처럼 꾸몄다. 그 무렵 쓴 《다산시문집》의 <죽란화목기(竹欄花木記)>를 보면 당시 풍경이 잘 묘사돼 있다.

우리 집이 명례방에 있었는데, 그곳은 높은 벼슬아치와 세력 있는 집안들이 많아 수레바퀴와 말발굽이 날마다 길 앞으로 서로 내달린다. 이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완상할 만한 연못이나 정원이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 집 뜨락을 반 정도 할애하여 경계를 정하고, 여러 꽃과 과일나무 중에서 좋은 것을 구하여 그것들을 화분에 심어 채웠다. …… 세상 사람들이 숭상하는 것으로 말하면, 해묵은 복사나무나 살구나무의 뿌리 중에서 썩어 뼈대만 남은 것을 취해다가 다듬어서 괴석(怪石)처럼 만든 뒤에 매화는 겨우 조그마한 가지 하나를 옆에 붙여 심어 놓고 이를 기이하게 여긴다. 그러나 나는 뿌리와 줄기가 견실하고 가지가 번성한 것을 좋게 여기니, 좋은 꽃이 피기 때문이다.

치자나무는 두 본이 있는데, 두공부(두보를 칭함)의 시에 '치자나무는 여러 나무에 비해 인간 세상에 흔하지 않은 꽃이다. 산다(山茶)가 한 본이 있고, 금잔화(金盞花)와 은대화(銀臺花)가 네 본이 있는데, 이 두 가지를 한 화분에 심은 것도 하나 있다. 파초(芭蕉)는 크기가 방석만 한 것이 한 본 있고, 벽오동(碧梧桐)은 2년생이 한 본 있고, 만향(蔓香)이 한 본 있고, 국화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모두 열여덟 분(盆)이고, 부용(芙蓉)이 한 분이다.

그리고 대나무 중에 서까래처럼 굵은 것을 구하여 화단의 동북쪽을 가로질러 난간을 세웠으니, 이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비복(婢僕)들이 옷으로 꽃을 스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이른바 대나무 난간(竹欄)이다. 언제나 조회(朝會)에서 물러 나와서는 건(巾)을 젖혀 쓰고 난간을 따라 걷기도 하고 혹은 달 아래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니, 고요한 산림(山林)과 원포(園圃)의 정취가 있어서 수레바퀴의 시끄러운 소음을 거의 잊어버렸다.

윤이서, 이주신, 한혜보, 채미숙, 심화오, 윤무구, 이휘조 등 여러 사람이 날마다 이곳에 들러 취하도록 마셨는데, 이것이 이른바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것이다.

국역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와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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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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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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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대나무로 난간을 꾸민 화원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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