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의 기억을
걷다
한 맺힌 봉우리에 오르다
관련 장소 | 동묘 |
---|
흥인지문 밖 숭인동에는 동묘가 있다. 동묘는 중국 후한의 장수인 관우를 신앙하기 위해 건립한 묘당이다. 《증보문헌비고》 <예고(禮考)>를 보면, 임진왜란 때 가끔 관우의 혼이 나타나 명나라 군사를 도왔으므로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관왕묘를 건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란 후 민심 이반을 우려한 당시 기득권층이 중화사상에 입각한 사대주의적 통치 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동묘 부근에는 고려의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청룡사(靑龍寺)가 있다. 청룡사의 본래 이름은 정업원(淨業院)이었다. 이곳은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와 관련된 곳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가자 이곳 정업원으로 옮겨와 살았다. 정업원은 왕실 궁녀들이 말년을 보내던 곳이다. 정업원과 마주한 곳에는 동망봉(東望峰)이란 봉우리가 있는데 정순왕후는 매일 이곳에서 단종이 있는 영월 쪽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고 한다. 정업원에 행차한 영조는 이곳에 누각과 비석을 세우라 명한다.
임금이 정업원의 옛터에 누각을 세우고 비석을 세우도록 명하고,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다섯 자를 써서 내렸다. 정업원은 흥인문 밖 산골짜기 가운데에 있는데, 남쪽으로 동관왕묘와 멀지 않았으며, 곧 연미정동으로 단종대왕의 왕후 송씨가 조용하게 거주하던 옛터다. - 《영조실록》, 1771년 8월 28일
실록에는 아흐레 후인 9월 6일, 영조가 왕세손(정조)과 함께 창덕궁에서 정업원까지 행차하여 배례(拜禮)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임금은 친히 '東望峰(동망봉)' 세 글자를 쓰고 정업원과 마주 대하고 있는 봉우리 바위에 새기도록 명하였는데, 곧 정순왕후가 올라가서 영월 쪽을 바라다보던 곳이다.
정업원 비각에는 '前峯後巖於千萬年(앞산 뒷바위 천만년을 가오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것 역시 영조가 친히 쓴 글이다. 영조가 궁궐 여인들의 한이 서린 곳에 이렇게 애틋한 감정을 지녔던 이유는 바로 그의 친모가 무수리 출신이었기 때문일까?
1823년(순조 23년)에는 순원왕후의 병세가 깊어지자 부원군인 김조순이 이 절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왕후의 병이 낫자 절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한 맺힌 봉우리에 오르다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