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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세상을 피해 그윽하게 숨어 살던 화가
관련 장소 | 인왕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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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인왕산을 몽롱한 꿈의 세계, 무릉도원의 세계로 표현한 안견이 있었다면 18세기 인왕산에는 중국 화풍과는 또 다른 조선의 새로운 화풍을 창시한 화가 겸재 정선이 살고 있었다. 정선은 조선 산수화풍의 새로운 화법을 만든 인물이다. 평생을 인왕산 아래서 산 그였기에 그의 진경산수는 인왕산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런 그가 화가로 온전히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결정적으로 사천 이병연의 후원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인왕산 아래서 함께 마주 보며 살았다. 스승 김창흡 밑에서 동문수학했지만 나이는 이병연이 다섯 살 위였다. 하지만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우정을 나누었다. 이병연이 시를 써서 보내면 정선은 그림으로 답했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었다. 그림이 가면 곧바로 시가 왔다.
정선이 일흔다섯 살이던 어느 여름날, 여든 살 노인 이병연은 앓아누운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선 한 달 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정선은 가슴이 아팠다. 어느 날 문득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맑게 갰다. 물먹은 인왕산이 말갛게 다가왔다. 정선은 그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우뚝우뚝 솟은 바윗덩어리, 막 피어오르는 물안개, 물에 흠뻑 젖은 소나무들, 바위를 타고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림 아래쪽엔 이병연의 단아한 집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은 친구 이병연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친구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병마를 극복하길 기원하는 마음을 화폭에 담았다. 하지만 그의 친구는 그림이 완성된 지 5일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성 우윤 이병연이 졸(卒)하였다. 이병연의 자는 일원으로 한산 사람이며, 호는 사천이다. 성품이 맑고 드넓었으며, 어려서 김창흡을 따라다녔다. 지은 시가 수만 수인데, 그의 시는 강건하고 웅장하여 이따금 옛것을 압도함이 있어, 세상에서 시를 배우려는 자들이 많은 본보기로 삼았다. - 《영조실록》, 1751년 윤5월 29일
정선의 그림 <인곡유거(仁谷幽居)>는 인왕산 골짜기 그윽한 풍경 속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선비의 정취를 표현한 그림이다. 그림 속 집이 바로 정선의 집이다. 그는 52세부터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둘 때까지 이 집에 머물며 진경산수화의 극한 경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바깥 사랑방 동쪽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자연 속에 묻혀 사는 화가의 멋과 여유가 느껴진다.
<인곡유거(仁谷幽居)>가 정선의 말년 삶이라면 그의 초기 삶은 인왕산과 북악산이 마주한 곳에 있었다. 정선은 1676년 1월 3일 지금의 경복고등학교 교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676년부터 1727년까지 약 50년을 살았다. 이 동네에는 안동 김씨 중에서도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이 일가를 이루어 살면서 장동 김씨라 불렸는데, 정선과 이병연의 스승 김창흡이 바로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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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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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세상을 피해 그윽하게 숨어 살던 화가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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