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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백세청풍, 그 이름이 무색하다
관련 장소 | 인왕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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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동(紫霞洞)은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창의문 아래 북악산 기슭을 일컫던 동네 이름이다. 한자로는 '붉은 노을 속에 잠긴 마을'이란 뜻으로 창의문 건립 당시 다락에는 나무로 만든 닭을 걸어 놓았다. 풍수지리상 이 문밖의 지형이 지네의 형상이므로, 그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서 지네와 상극인 닭을 만들어 걸어야 한다는 이유다. 훗날 인조반정을 일으킨 이귀 등이 이 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문루에는 당시 반정공신의 명단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임금이 북교(北郊)에서 기우제(祈雨祭)를 행하고, 창의문루(彰義門樓)에 역림(歷臨)하여 옛일을 추상(追想)하여 시(詩)를 짓고, 이를 새겨 걸도록 명하고, 정사공신(靖社功臣)의 성명 또한 판자에 열서(烈書)하도록 명하였다. - 《영조실록》, 1743년 5월 7일
창의동(彰義洞)은 청운동 일대를 일컫는데 창의문 안쪽이 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고 이것이 장의동(壯義洞)으로 그리고 다시 장동(壯洞: 지금의 효자동, 청운동)으로 바뀌었다. 또한 청운동이란 동명은 이곳에 원래 있던 청풍계(淸風溪)와 백운동(白雲洞)의 글자를 따온 데서 유래한다.
청운동 52번지, 청운초등학교를 바라보며 우측 옆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철창살 대문으로 가로막힌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된다. 그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높은 콘크리트 담장에 갇힌 제법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에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말이 새겨져 있는데, 원래는 '대명일월 백세청풍(大明日月 百世淸風)'이었던 것이 훼손되어 이 바위만 남았다.
이곳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장렬히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옛집 자리다. 김상용은 형세가 급박해지자 성의 남문루에 올라가 앞에 화약을 장치한 뒤 좌우를 물러가게 하고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었는데, 그의 손자 한 명과 노복 한 명이 따라 죽었다.
김상용의 동생이 바로 병자호란 때 끝까지 청과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한 척화신(斥和臣) 김상헌(金尙憲)이다.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이귀 등 반정 주체 세력에 대항해 주전론을 펼친 그의 집이 있던 곳은 인왕산 필운대 아래 지금의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이 있는 자리다. 또한 이곳은 옛 중앙정보부의 궁정동 안전가옥 터기도 하다. 1979년 10월 26일, 이곳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청와대는 '궁정동 안가'라는 음울한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안가를 헐고 공원을 꾸며 일반인들에게 개방했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은 동시에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도 품고 있는 것일까? 400년 전 김상헌의 집이 있던 이곳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김상헌의 집은 육상궁(毓祥宮: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사당)과 담을 맞대고 있었다고 한다. 김상헌은 사랑채 당호를 '무속헌(無俗軒)'이라 짓고 그 앞뜰 이름을 '동청(冬靑)'이라 불렀다. 겨울에도 푸른빛이 살아 있는 사철나무를 가득 심었는데 김상용의 집터인 청풍계 역시 맑고 깨끗한 바람이 부는 계곡이란 뜻이다. 16세기 무렵 이곳은 그윽하고 아름다운 자리였을 것이다. 최완규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원래 청풍계는 김상용의 고조부 사헌부 장령 김영수가 살던 집터였다. 그의 맏형인 학조대사가 잡아준 명당이라는 것이다.
학조대사는 세조 때부터 중종 때까지 왕실의 뜻을 받들어 불사를 도맡았던 인물이다. 당연히 풍수지리에 정통했던 그가 자신을 극진하게 공경하는 막내 제수 강릉 김씨를 위해 잡아준 집터라 하니 한양 도성 안에서 가장 빼어난 명당이었을 것이다. - 《동아일보》, 2002년 4월 18일
청풍계가 명당이어서인지 예부터 전해 내려온 골짜기 전설이 있다. 옛날 청풍교 근처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젖먹이 때부터 행동이 비범하므로 나라에서 알면 멸문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부모가 아이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죽인 지 사흘 만에 그곳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면서 집 근처와 인왕산을 뛰어다니다가 결국 칠성대(七星臺) 아래 높이 솟은 바위틈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
조선 시대의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 세종의 명으로 맹사성(孟思誠), 신장(申檣) 등이 썼다. 55권 25책.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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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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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백세청풍, 그 이름이 무색하다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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