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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 살던 연암, 인생의 덧없음을 읊다
관련 장소 | 북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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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악산 서쪽과 동쪽에는 백운동과 삼청동 두 계곡이 있다. 삼청동은 소인묵객들의 공간이자 아낙네들의 놀이터로 늘 북적거렸다. 삼청동에 있는 숙정문 뒤로는 지금도 수려한 경치가 펼쳐져 있는데 옛날에는 그 절경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 대한제국 말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썼던 장지연은 일찍이 삼청동의 경관을 이렇게 묘사했다.
삼청동 골짜기는 바위와 비탈이 깎아지른 듯 하고 그윽이 우거진 나무들 속으로는 높은 데서 흐르는 물이 깊은 연못을 만들었다. 물은 다시 돌바닥 위로 졸졸 흘러 이곳저곳에서 가느다란 폭포를 이루며 물 구슬마저 튀기곤 한다. 여름철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서 해마다 한여름이면 서울 장안의 놀이꾼 선비는 말할 것 없고 아낙네들까지도 꾸역꾸역 모여들어서 서로 어깨를 비빌 만큼 발걸음 소리도 요란하였다. - 《유삼청동기(遊三淸洞記)》
백련봉(白蓮峯)은 북악산의 줄기로 석벽에는 '影月巖(영월암)'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연암 박지원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청장년 시절 가난을 면치 못해 오늘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백련봉 아래에 있는 이장오의 별장에서 세 들어 살았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유람을 즐기던 그의 집에는 비 오는 날 저녁이나 눈 오는 아침이면 늘 술병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1758년 12월 14일 밤, 박지원은 친구 세 명과 함께 북악산의 동쪽 기슭에 있는 대은암(大隱巖)에 올라가 술을 마셨다. 시냇물이 얼어붙은 그 위로 다시 얼음이 생겨 얼음덩이가 층층이 쌓인 가운데에도 얼음 밑으로는 샘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나이 겨우 22세, 셋방살이하던 답답한 청춘이라 추위쯤은 상관없었다. 해가 지고 싸늘한 달빛에 주위마저 고요하니 느긋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나누었다. 그러다 한숨이 나와 이런 말을 하였다.
남곤과 그의 친구 박은은 일국의 명사로 술을 마시면 언제나 대은암에 와서 마셨고 두 사람은 서로 마주할 때마다 시를 짓지 않은 적이 없다. 당시 박은은 문장으로 보나 교유로 보나 그 성대함이 한 시대에 일등 가는 인물이건만 수백 년 지나는 동안 자취가 인멸되어 아무것도 알 수 없이 되었거니와 하물며 남곤과 같은 사람이야 생각한들 무엇하랴?
박지원은 무너진 담과 허물어진 터 사이에서 쓸쓸함을 느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덧없음을 아쉬워했다.
아! 슬프다. 당시 박은이나 남곤이 이곳에서 놀 때 그 의리가 정말 어떠했던가? 실컷 퍼마시고 대취하여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얼싸안고 함께 흐느낄 때 그 기세는 산도 무너뜨릴 만하고, 그 도도한 언어는 큰 강물을 터놓을 만하였으려니, 그들이 천고 이래 역사와 인물을 논하며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어찌 엄격하게 하지 않았으랴? 그런데 박은은 연산군 때 직간하다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가 지은 시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니나 오히려 더 많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긴다. 오늘날에도 그의 시를 읽으면 늠름한 기상이 사람들을 긴장하게 한다. 그러나 남곤은 어떤 삶을 살았나? 몰래 대궐 북문(신무문)으로 들어가 화를 일으키고 바른 선비를 함부로 살육하였으니 그는 임종 때 후세에 글이 전해진들 누가 보겠느냐며 자기 글을 전부 불살랐다고 한다.
남곤은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 세력들을 몰아내기 위해 기묘사화를 꾸며 신무문을 몰래 열고 중종의 묵인하에 그들을 숙청하는 일에 앞장서 훗날 심정, 홍경주와 함께 기묘 삼흉(三凶)으로 불리게 되는 인물이다. 박지원은 그에 대한 미움이 사대부 대대로 이어졌음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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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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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삼청동에 살던 연암, 인생의 덧없음을 읊다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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