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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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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영혼을 그리는 화가 강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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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낙산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은 1713년 윤5월 21일 한양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등에 표범 같은 얼룩무늬가 있다고 해서 표암이란 호를 얻었다.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대대로 학문과 장수를 누리던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 강현의 극진한 사랑과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버지 강현이 유배 길에 오르면서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결국 강세황의 나이 스무 살에 부모를 모두 잃고 아내와 함께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강세황은 책만 봤다. 가난한 살림은 오직 부인 유씨 몫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인 유씨마저 그의 나이 마흔네 살에 유명을 달리하고 어린 네 아들을 보살펴야 했던 강세황은 환갑이 넘어서야 겨우 출사할 수 있었다.

얼굴은 물정에 어두운 꼴을 하고 있지만 흉금은 시원스럽다. 평생 가진 재능 펼쳐보지 못해 세상에서 그 깊이를 아는 자 아무도 없다. 오로지 한가로이 읊은 시나 가볍게 그린 그림에서나 때때로 기이한 자태와 예스러운 마음 드러낸다. - 강세황이 자신의 자화상에 붙인 글
강세황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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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의 자화상을 보면 고생에 찌든 흔적이 얼굴 곳곳에 묻어 있다. '물정 어두운 꼴이나 흉금은 시원스럽다'고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자화상에는 시원한 흉금이 드러나질 않는다. 선비가 그림을 그리면 배가 고프다는 말도 있지만, 너무 배가 고픈 선비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정신만을 잡아 그렸기 때문에 속된 화공이 그저 모습으로 묘사한 것과 현저히 달랐다." 자신의 자화상을 스스로 극찬한 강세황의 말이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 34권에는 강세황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사는 고을 집에 마치 쥘부채를 펴 놓은 것처럼 누문(樓門)을 세웠는데 이름을 선자루(扇子樓)라 하였다. 그 그림을 40~50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매우 완상할 만하였다.

강세황은 1712년에 태어나 1791년에 죽은 사람이고, 이유원은 1814년에 태어나 1888년에 죽은 사람이다. 백 년이란 시차가 있다. 《임하필기》에 소개된 강세황 일화를 더 살펴보자.

공은 영조 병신년(1776년) 노인과(老人科)에 올랐다. 공이 일찍이 부사(副使)로 연경에 갈 때 심양에서 폭설을 만났다. 이때 상사(上使)인 노포 이휘지와 시문을 지어 주고 받았고 또 서화(書畫)를 남겼는데, 그 첩(帖)이 일찍이 나의 서가에 있었다. 공은 연경에서 명사들을 널리 사귀었는데, 어떤 이가 공에게 글을 써주기를 "글은 한퇴지(韓退之)와 같고,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와 같고, 그림은 고개지(顧愷之)와 같고, 풍채는 두목지(杜牧之)와 같으니, 광지(光之)는 이 사람들을 겸하였구려(文之退之 筆之羲之 畫之愷之 人之牧之 光之兼之)"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열 개의 지(之)자평(十之評)'이라고 한다.

백 년 후 인물이 강세황을 회고하며 쓴 글인데 글씨와 그림은 물론 풍채 또한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술회하고 있다. 강세황은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했으며, 1778년 9월 17일 시행된 문신 정시(과거시험의 일종)에서 장원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단한 인물이었음에도 예순 살까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생 자체가 굽이굽이 고갯길이었으니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아쉬운 것은 바위에 새겨진 '홍천취벽(紅泉翠壁)'이란 그의 글씨가 낙산의 이름난 유적으로 자리했다는데, 이화장을 지으면서 그만 땅속에 묻혔다고 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18세기 문인화가의 거목 강세황을 땅에 묻은 격이라 하면 너무 비약이 지나친 것일까?

강세황이 70세에 그린 자화상

스스로 지어 붙인 자찬문(自讚文)에서 그의 강한 자의식을 느낄 수 있다. “머리엔 오사모를 쓰고, 몸에는 야복을 걸쳤으니, 마음은 산림에 있되 이름은 조정에 있음을 보이도다. 마음속에 책 수천 권을 숨기고, 붓으로 오악을 흔들지만,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스스로 즐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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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임하필기(林下筆記)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유원(李裕元)의 문집. 1871년(고종 8년) 조선과 중국의 사물에 대하여 고증한 내용이다. 39권 33책.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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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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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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