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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남산
목멱산(木覓山), 南山고려 시대의 수도 개성에도 남산(南山)이 있었고 경주 서라벌에도 남산은 있다. 남산이란 말 그대로 도성의 남쪽 산을 의미하지만 그렇게 지리적으로 간단히 개념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곳은 아니다.
풍수지리상 남산은 화산(火山)인 관악산의 불기운이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남산 아래 숭례문 옆으로는 남지를 팠다. 그런데 남지를 팠는데도 도성에 화마가 끊이질 않자 이후 연못은 메워졌다 복원되기를 반복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는데 남지가 복원되면 남인이 득세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당시 남지는 남인 세력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
한편 당시 남산 아래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해서 조정에 나가 출세하려는 남산골 샌님들이 그 한 부류이고, 또 한 부류는 정계에서 은퇴하기는 했으나 정치와 완전히 담을 쌓지는 못하고 다리 하나를 슬쩍 걸친 지식인들이다. 그 경계가 되는 지점이 바로 남산이다. 그래서 남산 위에 올라가 도성을 바라보면 궁궐 사정이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남산에는 설마현(雪馬峴) 고개가 두 개 있는데 설마(雪馬)란 눈썰매를 의미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목멱산(木覓山: 남산의 옛 이름) 남쪽의 서빙고 동쪽 고개를 큰 설마라 하고, 산 동쪽 한남동 방면에 있는 고개를 작은 설마라고 한다. 또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는 목멱산 남쪽 이태원(梨泰院)에 있는 들에는 고산사(高山寺) 동쪽으로 흐르는 샘물이 있으며 큰 소나무가 골짜기에 가득하여 성 안 부녀자들이 빨래하러 많이 갔다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
조선 시대의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 세종의 명으로 맹사성(孟思誠), 신장(申檣) 등이 썼다. 55권 25책. 목판본.
국역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이 쓴 조선 시대의 야사총서(野史叢書). 59권 42책.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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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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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남산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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