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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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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집은 성균관 서쪽 산기슭에 있었는데, 그래서 동네 이름을 송동(宋洞)이라 했다. 송시열은 독선적이고 강직했다. 그는 임금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숙종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이미 장옥정(희빈 장씨)에게 몸과 마음이 취해 있던 임금은 장희빈의 배에서 나온 아들로 대를 이으려 했다.
인현왕후의 나이 스물두 살이니 임금으로서도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이라 판단했다. 인현왕후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던 서인들은 반발했고 그 중심에 송시열이 있었다. 송시열은 왕세자 책봉은 시기상조라며 극렬하게 반대하다 결국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국문을 받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한 사발로 모자라 한 사발을 더 달라고 했다니 기개가 놀랍다.
송시열은 충청도 옥천에서 태어났고 그의 집안인 은진 송씨는 회덕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았다. 그가 조선을 유교의 나라로 바로 세우기 위해 한양에 올라왔을 때 머물던 곳이 바로 이곳 숭교방 흥덕동이다. 오늘날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정문 앞에는 송시열 선생 집터라는 알림석이 있다. 그리고 건물 왼편으로는 흥덕사 터라는 알림석이 있다. 그가 거주하면서 그 주변 마을 이름도 송동으로 바뀐다.
송시열 집터는 원래 이성계의 서울 집터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왕이 되기 전 잠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어 흥덕사 절터가 됐다. 앞서 한도십경 중 하나라 소개했듯 흥덕골은 산수가 빼어나 봄부터 가을까지 늘 꽃동산이다.
누대 그림자 겹겹이 물속에 비치는데, 누대 앞 연꽃 아침 이슬에 씻겼어라. 난간에 옮겨 의지하여 풍경을 구경하니, 6월의 맑은 향기가 모시옷에 풍긴다. 붉은 깃대 푸른 일산 수없이 많은데, 마주앉아 때로는 총채를 휘두르네. 서늘한 기운이 뼈에 스며 구슬 자리 차가운데, 날 저물자 가벼운 바람은 비를 불어오네. - 월산대군, <흥덕상화>
흥덕상화를 노래한 월산대군이나 강희맹, 서거정의 시에서 연꽃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에게 이곳 연못 풍경이 참으로 장관으로 소문났음이 틀림없다.
《한경지략》에는 "우암의 옛집이 송동에 있는데 석벽에 자신이 쓴 '증주벽립(曾朱壁立)'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글자는 지금도 실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한 시간 동안 명륜동 1가 일대의 모든 집 담벼락을 뒤지고 다닌 끝에야 겨우 찾았다. 연립주택 담벼락에 박힌 바위의 구석진 곳에 마치 우암의 고집처럼 굳건하게 글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송시열의 친필로 알려진 증주벽립은 증자(曾子)와 주자(朱子)처럼 정도를 지키며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타협을 거부하고 독선적이었던 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바위에 한 길 남짓 되는 틈이 있어 작은 개구리가 숨어 사는데 두세 마리 혹은 네댓 마리로 그 수가 일정치 않고 봄가을 가릴 것 없이 늘 그곳에 살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늘 똑같았다고 한다. 사람이 붙잡아 땅에 꺼내 놓으면 곧바로 위로 올라가 그곳으로 숨는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또 이 바위에 북한산에서 자란 살구나무를 붙여놓으면 절로 자라난다고도 했다.
조금 과장되고 신성시까지 하던 이곳은 오늘날 연립주택 콘크리트벽에 남은 글씨만이 흐린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 동네 위로는 살구나무들이 성벽을 따라 심어져 있어 당시 풍광을 다소간 엿볼 수 있었다.
바위 앞에는 아주 작은 표석이 있는데 너무 깊숙이 숨겨져 있어서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이 표석에는 '우암구기(尤菴舊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우암의 옛 집터라는 뜻이다.
국역 임하필기(林下筆記)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유원(李裕元)의 문집. 1871년(고종 8년) 조선과 중국의 사물에 대하여 고증한 내용이다. 39권 33책. 필사본.
한경지략(漢京識略)
조선 시대 한성(漢城)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 책. 연대는 미상이며, 저자는 유득공의 아들 유본예로 추정되는 수헌거사(樹軒居士)다. 2권 2책.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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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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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삶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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