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의 기억을
걷다
죄인들을 처단하던 무교동
관련 장소 | 종로 |
---|
남산 서쪽 기슭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창동천 위에 있던 다리를 무교(武橋) 또는 모전교(毛廛橋)라 불렀다. 다리 앞에는 조선 시대 무기와 군수물자를 만드는 일을 맡아보던 군기시가 있었는데 오늘날 중구 태평로 1가 서울신문사와 시청 일대에 해당한다. 무교동(武橋洞)이라는 지명도 이 다리에서 유래했다.
무교는 때로는 역적을 처단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고종실록》에는 본래 사형은 서소문 밖에서만 거행했는데 급히 처형해야 할 죄인이 있으면 무교에서 집행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전에 전하께서 친국하실 때 '죄인을 무교에서 사형하는데 그곳은 도성 안이라서 온당치 못한 바가 있다. 서소문 밖에서만 거행하라'는 일로 신이 이미 명을 받았으므로 응당 정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종전에는 급히 처형하여야 할 죄인이 있을 경우 무교에서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집행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한 시각이 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 후일에 만약 이러한 죄인들이 있으면 그때에 가서 무교에서 사형을 집행하게 하도록 의금부에서 품정한 다음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고종실록》 1872년 4월 30일
한 시각이 급하게 사형을 집행해야 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죄인이 많았던 것일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개중에는 분명 억울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사형수들을 무교 다리 앞에 모두 모아놓고 참수한 적도 있었다고 하니 사뭇 살벌했던 다리임은 분명하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죄인들을 처단하던 무교동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