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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장희빈의 수표교 만남
관련 장소 | 청계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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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안의 모든 물은 도성을 동서로 가르는 청계천으로 모였다. 이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 다리(전곶교) 근처에서 중랑천을 따라 한강으로 빠진다. 청계천의 본래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다.
청계천에는 마전교(馬廛橋)라는 다리가 있었다. 1420년(세종 2년) 당시 우마(牛馬)를 매매하는 마전(馬廛)이 있었기 때문에 마전 앞에 있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1441년(세종 23년) 나라에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들자 세종은 정확한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인 수표(水標)를 개발하고 마전교 서쪽 중앙에 세웠다. 수표는 하천이나 호수 등의 수위를 재는 측량 기구로 청계천 마전교에 설치할 당시에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 뒤로 마전교는 수표교(水標橋)라 불렸다.
성종 때는 나무로 만든 수표가 쉽게 부식되는 단점이 있어 다시 돌로 만들어 세웠다. 이후 영조 때 대대적인 청계천 준설 공사를 하면서 수표석도 새로 만들어 세웠다. 영조는 준천 이후 수표교 교각에 경진지평(庚辰地平)이란 글자를 새겨서 이후 개천 준설의 표준을 삼도록 하였다.
수표교 남쪽, 지금의 서울 중부경찰서 자리에는 역대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을 모신 영희전(永禧殿)이 있었다. 왕은 설, 추석, 단오 등 명절에는 수표교를 지나 영희전을 왕래했다. 이곳에 왕이 참배하러 올 때는 융복(戎服)을 입었다고 한다.
숙종도 융복을 입고 영희전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수표교를 건너던 중 여염집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 장옥정(훗날 희빈 장씨)을 발견한다. 한눈에 미인임을 알아볼 정도로 눈부신 외모였다. 파유용색(頗有容色), 즉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라는 기록은 실록에서도 이례적인 표현이다.
장옥정은 중인인 역관 집안의 서녀(庶女)였다. 장옥정의 숙부 장현은 《숙종실록》에 '국중(國中)의 거부'라고 기록될 정도로 부자인 데다 역관의 우두머리로서 1677년(숙종 3년)에는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까지 오른 인물이다. 여인은 요즘으로 치면 미모의 재벌가 따님이었던 셈이다. 그 여인은 단숨에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곧바로 궁으로 들어와 아들을 낳는다.
1687년(숙종 13년)에 조사석이 우의정으로 발탁되었는데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장옥정의 어머니와 친밀해서 청탁으로 정승이 되지 않았는가?'라는 말이 많았다. 숙종이 경연(經筵: 국왕에게 고전을 강독하고 논평하는 제도) 중에 김만중을 통해 이 소문을 듣고는 노해 "내가 한 나라 임금으로 한 여자에게 미혹해 뇌물을 받고 정승까지 시켰단 말인가?"라며 "그 말의 출처를 캐어 오늘 안으로 자수케 하라!"라고 명했다.
영의정 남구만이 정승에서 물러나겠다고 고하며 어명을 거두어달라 청했지만 듣지 않았다. 김만중을 잡아다 세 차례 문초해도 그 말의 출처가 나오지 않자 선천으로 귀양 보내고 서인 정권을 실각시켰다.
이듬해(숙종 14년)에는 장옥정이 왕자를 낳자 친정어머니 윤씨가 산모를 보살피러 옥교(덮개 있는 가마)를 타고 대궐에 들어오던 중 사헌부 지평 이익수와 이언기 등에게 발견돼 옥교를 빼앗기고 치죄(治罪)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헌부에서는 천한 여인이 옥교를 타고 대궐을 들어오는 것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상소했다.
이에 임금은 크게 노해 "궁중의 시녀들도 천인에 불과하지만 품계가 상궁에 오르면 법에 따라 가마를 타거늘 하물며 왕자의 외가에서 출입하는데 어찌 모욕을 줄 수 있느냐"며 곧바로 사헌부 금리와 조례 두 관리를 호되게 쳐서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평 두 명도 파면해버렸다.
이어 1689년(숙종 15년)에는 장옥정을 희빈으로 삼고 그 아들을 원자로 삼는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나서서 원자 책봉을 강력히 반대하다 사약을 받고 죽었다. 숙종과 장옥정의 수표교 만남이 없었다면 백 년 넘게 지속한 정쟁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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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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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숙종과 장희빈의 수표교 만남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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