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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무악 궁궐터
관련 장소 | 안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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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 남쪽은 땅이 좁아서 도읍을 옮길 수 없습니다. 이 논리 때문에 안산은 도성 후보에서 탈락했다. 하륜은 끝까지 안산을 궁궐터로 주장했다. "무악이 다른 명당에 비해 좁은 듯하지만 송도에 있는 강안전과 평양에 있는 장락궁과 비교한다면 좁은 것도 아니고 넓은 편입니다." 하륜은 집요했다. 고민에 빠진 이성계는 도읍지를 결정하기 위해 여러 관원들을 데리고 안산을 올라 친히 살폈다. 그러나 도평의사사의 중지를 모은 결과 안산은 세 부족으로 도읍지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10년 후인 1404년 다시 안산이 도읍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경복궁에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벌이며 이복형제들을 죽이고 정도전을 참살한 태종은 경복궁으로 다시 들어가기가 싫어 새로운 곳으로 궁궐을 옮기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안산이 유력한 후보지로 재거론된 것이다.
의견이 너무 팽팽해서 결론을 도출할 수가 없자 태종은 갑자기 조준에게 물었다. "옛날 중국에서는 이렇게 도읍지 선정으로 의견이 팽팽하면 어찌하는가?" 그러자 조준은 "동전으로 정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동전을 던져 점을 치는 것을 척전(擲錢)이라 했다. 척전 결과 북악산은 2길(吉) 1흉(凶)이었고, 안산은 송도와 함께 2흉 1길이었다.
논의가 정해지자 임금이 나서 향교동 동쪽 가를 살펴보고 길흉을 판단하여 이궁(離宮)을 짓도록 명했다. 그리고 어가를 돌이켜 광탄에 머물면서 호종하는 대신과 더불어 말했다. "나는 무악에 도읍하지 아니하였지만, 후세에 반드시 도읍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1404년 10월 6일 태종의 탄식이었다. 나중에 태종은 서쪽에 궁궐이 없으니 별궁을 짓자고 했다. 그래서 안산 아래 100칸이 채 못 되는 별궁을 짓고 처음에는 서이궁(西離宮)이라 불렀다가 연희궁(延禧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세대 정문에 들어서면 오른쪽 이한열 열사 추모비 옆으로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묘 수경원(綏慶園)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연희궁 자리였다는 표석이 보이는데 연세대 캠퍼스가 옛날에는 연희궁 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태종이 안산 앞을 궁궐터로 추진했다면 오늘날 연세대 자리에는 궁궐이 들어섰을 것이다.
- 1능을 옮기기 전(1928년)의 수경원 모습
- 2능을 옮긴 후(1980년대 초)의 수경원 모습
하지만 연희궁 자리는 좀 논란이 있다. 연희동에는 연희동 삼거리에서 서대문구청으로 넘어가는 대궐재라는 고개가 있다. 《궁궐지(宮闕誌)》에도 "도성 밖 서쪽 15리 양주에 연희궁이 있는데 정종이 왕위를 선양하고 나서 이 궁에 머물렀다"라는 소개가 있지만 현재 궁터는 찾을 수 없다. 대체로 연희입체교차로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울시에서 공식 인정하는 곳은 연세대 캠퍼스 정문 오른편이다.
세종은 연희궁 언덕에 소나무를 심어 경관을 좋게 하고 궁 주변에는 과일나무와 뽕나무를 심으라 명했다. 그래서 한때 이곳은 서잠실이라 불리기도 했다. 연산군 시절에는 연희궁을 연회장으로 삼아 유흥을 즐겼는데, 연산군이 어찌나 질탕하게 놀았던지 '연희궁 까마귀골 수박 파먹듯 한다'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 여름철이 되면 먹다 남은 수박과 참외를 산더미처럼 내다 버리는 바람에 까마귀 떼가 몰려와 쪼아 먹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옛날에는 이 일대에 소나무가 무성하고 고개가 매우 험하다 해서 한달고개란 이름도 붙었다.
1445년(세종 27년) 1월 16일에는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 태어난 막내아들인 평원대군이 죽었다. 《세종실록》에는 이에 충격을 받은 세종이 한양을 떠나 이곳 연희궁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해 가을에는 임금(세종)이 주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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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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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무악 궁궐터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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