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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의 주역 훈련방
관련 장소 | 을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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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 시험과 병사 훈련을 맡았던 훈련원(訓鍊院)은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 부근 명철방(明哲坊)이 있던 지역에 처음 설치했다. 오늘날 을지로 5가와 6가에 있었으며,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터에 해당한다. 훈련원 앞에 있던 다리는 훈련교 또는 훈련원 다리라고 불렀다.
훈련원 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어 통정(桶井)이라고 불렀다. 통정은 물의 품질이 가장 좋아서 성 안에 제일이다. 맛이 매우 달고 차며 겨울에는 따스하고 여름에는 차다. 가뭄과 장마에 늘고 줄지 않으니 조정에서 봉하여 어정으로 삼았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1506년(연산군 12년)에는 이조참판을 지낸 성희안과 중추부지사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할 것을 모의한 뒤 훈련원에서 군사들을 모으기로 했다. 1506년 9월 1일, 군기시첨정 박영문, 사복시첨정 홍경주 등이 무사를 규합해 그날 저녁 훈련원에 모여 편대를 나누어 다음 날 밤 3경에 창덕궁 어귀에 진을 쳤다.
영의정 유순, 우의정 김수동 등이 와서 모였고, 백관(百官)과 군민(君民)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 길을 가득 메웠다. 마침내 용사를 보내어 연산군의 장인인 좌의정 신수근과 도승지 신수영, 좌참찬 임사홍 등을 쳐 죽이고, 갖은 부패를 일삼던 전동, 김효손, 강응, 심금손 등 간신을 군전(軍前)에서 목 베었다. 또 감옥 문을 열어 죄수를 풀어주고는 모두 거사에 동참하게 했다.
9월 9일에는 70세 이상 노인들을 불러 훈련원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반정 축하 연회였다. 한편 이곳 훈련원은 이순신이 무과 시험을 치른 장소로도 유명하다. 선조 대에 이순신이 무과 시험을 보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나뭇가지로 부목을 대고 다시 말에 올라 시험을 치렀다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
조선 시대의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 세종의 명으로 맹사성(孟思誠), 신장(申檣) 등이 썼다. 55권 25책.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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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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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중종반정의 주역 훈련방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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