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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내 시체들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서 시구문이라고도 불리던 소의문 밖에는 도성에서 장례를 치른 후 시신을 묻는 매장지가 있었다. 만리재, 애오개(애고개), 와우산 등이 매장지로 이용되었는데, 특히 애오개는 아이들 시체를 많이 묻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아이를 뜻하는 '兒'가 '阿'로 변하여 오늘날 아현동(阿峴洞)이란 지명이 생겼다.

아이들 무덤이 많아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애오개 탈춤놀이다. 또 이곳에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석전(石戰: 돌싸움) 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삼문(숭례문, 돈의문, 소의문) 밖 사람들과 아현 사람들이 무리 지어 돌팔매질을 하는 놀이인데, 삼문 밖 사람들이 이기면 서울 부근에 풍년이 들고 아현 사람들이 이기면 조선 팔도에 풍년이 든다 하여 삼문 밖 사람들도 아현 편을 들어 아현 편이 이기도록 했다고 한다.

아현동 서쪽으로는 대현(大峴: 큰 고개, 일명 대현동 고개)이 있었다. 대현은 아현동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곳으로 애오개보다 높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1730년 3월 9일 한밤중에 영조는 인정문 앞에서 왕손들을 저주한 궁녀들을 모아놓고 친국을 했다. 궁인 순정을 비롯한 몇몇 궁인들이 왕손들을 저주하여 흉한 물건을 땅에 파묻고, 사람 뼈를 음식 속에 넣다가 적발된 것이다.

죄인 세정을 국문하였다. 세정은 곧 여항(閭巷)의 과부로 순정과 친밀했는데, 뼛가루를 구하면 편지 봉투에 싼 뒤 거어지란 사람을 시켜 매번 순정에게 전해 준 자이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명(發明)하다가 복랑과 대질시키자 말문이 막혔다. 낙형(烙刑)을 가하자, 비로소 고하기를,
"뼛가루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순정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이른바 뼛가루란 무슨 뼛가루이고 어디서 구한 것이냐?"
하니, 말하기를,
"세교(細橋)에서 거름을 지는 사람인 김중청(金重淸)에게서 구했습니다."
하였다. 또 국문하기를,
"복랑의 말에 '흰 가루와 검은 가루가 있다.'고 하였다. 흰 가루는 사람뼈일 것이나 검은 가루는 과연 무슨 뼈이냐?"
하니, 말하기를,
"검은 가루는 곧 여우 뼈인데 이도 또한 김중청에게서 구했습니다. - 《영조실록》, 1730년 3월 9일"

궁인들은 세자와 옹주를 저주하기 위한 사람 뼈를 대현에서 구했다. 이날 궁녀 순정뿐 아니라 세교(細橋: 동교동 창천에 있던 작은 다리로 오늘날 동교동과 서교동의 유래가 됨)에서 사는 과부 세정 그리고 세교에서 거름을 지는 김중청까지 붙들려 와서 임금의 친국을 받았다. 궁녀 순정이 민가의 과부 세정에게 뼛가루를 구해달라 하자 김중청이 대현에서 사람 뼈를 구해 건넨 것이다.

궁녀들은 한 달 동안 시달렸다. 그러다 죽어나간 궁녀들도 숱했다. 어떤 여인은 열여섯 번 형신을 당하다 형장에서 죽었다. 1730년 3월 25일에는 박도창이란 자가 감옥에서 독살을 당했다. 영조는 그의 죽음을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들의 발악이라고 결론 내리고 나장을 비롯해 연관된 인물을 모두 잡아들이게 했다.

영조가 궁인들과 관련 인물들을 친국하고 사건을 더 깊이 수사하자 궁궐에는 자객까지 돌아다닐 정도로 반발이 강했다. 그 와중에 선의왕후(경종의 계비)의 환후가 위중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조는 왕후를 문병하고 말하기를 "증후가 별로 아픈 곳은 없는 듯한데, 울음소리 같은 음성을 내며 손으로 물건을 치는 듯한 형용을 한다"라고 했다.

결국 선의왕후는 어조당(魚藻堂)에서 승하했다. 야사에서는 선의왕후가 스무날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다 굶어서 죽었다고 한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주변 궁녀들을 모두 혹독하게 고문해 죽인 것에 화가 난 여인이 독을 품은 채 죽은 것이다. 남편인 경종의 죽음에도 영조가 관계됐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선의왕후는 그렇게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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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출처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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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도성 밖 아이들의 무덤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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