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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의 음기를 품은 숙정문
관련 장소 | 숙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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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문, 북문으로 불렸던 숙정문(肅靖門)은 사적 10호다. 1396년(태조 5년) 9월 축조된 이 문은 18년 만에 폐쇄됐다. 당시 풍수학자 최양선은 "숙정문은 지리학상 경복궁의 양팔과 다리 같으니 길을 내어 지맥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북쪽은 음(陰), 물(水)로 인식된 탓에 가뭄이 심하게 들면 비를 부르기 위해 숙정문을 열었다. 반대로 양(陽)이자 불(火)인 숭례문은 닫았다.
동소문에서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험준하다. 숙정문은 길과 길 사이에 연결된 문이 아니라 첩첩산중 높은 산악 지대에 세워진 문이다. 음양오행설로 보면 북은 물이요, 겨울이며, 그 성질이 음이니 형체 없는 기운이 왕래하는 문이다. 숙정문은 한때 물이 맑은 동네 삼청동 위라 숙청문(肅淸門)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북쪽은 여성을 상징한다고 해서 암문으로도 불렸다. 조선의 왕 가운데 가장 성적 탐닉에 열중한 연산군은 음을 상징하는 문인 숙정문의 위치를 조정한다. 1504년(연산군 10년) 숙정문을 약간 동쪽으로 옮겨 문루도 없이 성벽에 홍예로만 석문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가물고 비가 오지 않을 때 숙정문을 연 것은 도성의 음한 기운을 받아들여 비를 부르기 위함이다. 숙정문 바깥은 성북동인데 이곳은 공기 맑고 물이 좋아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솔바람이 솔솔 불어 살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유층의 별장이 많다.
오늘날에 숙정문 밖에는 외국 대사관 사저들이 밀집해 있다. 재벌가 별장과 대사관 관사가 한데 어울려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숙정문이 폐쇄된 후로 이곳이 아늑하고 은밀한 공간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숙정문은 오늘날에도 출입이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군경이 신분증을 확인하며 시간제한이 있다. 그런데 숙정문 부근에는 삼청동 말바위란 곳이 있는데 아마 당시 양반들은 이곳까지 말을 타고 올라와 말을 매 놓고 북악 정상까지 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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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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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도성의 음기를 품은 숙정문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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