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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제생원과 연암의 말년 집터
관련 장소 | 북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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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현대그룹 계동 사옥으로 가기 전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계동이다. 조선 시대 계동에는 제생원(濟生院)이 있어 제생동(濟生洞)이라 불렸다. 제생원은 태조 이성계가 1405년 세운 서민 의료 기관이다. 처음에는 의지할 곳 없는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 과부, 자식 없는 늙은이, 고아들을 수용하는 극빈자 구호소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고아 가운데 여자아이를 뽑아 의학을 가르치고 의녀로 활동하게 하자는 제생원사 허도의 제안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제생원에서 의녀가 양성되기 시작했다. 제생원에서 양성된 의녀가 활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혜민국(국가 의료 기관)이 함께 운영됐다.
가난하고 병든 걸인들이 유난히 많이 돌아다니던 그곳에 조선의 아웃사이더 지식인인 박지원이 말년에 살던 집터가 있다. 기록을 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그가 살던 중국식 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원래 사촌 동생 박수원의 소유였는데 마침 선산부사로 발령받으면서 집이 비게 되자 1796년 안의현감을 그만두고 상경한 박지원이 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 흙벽돌로 만든 집을 하나 더 지었다. 서쪽에는 다락을 만들고 창문을 냈는데 이름을 총계서숙(叢桂書塾)이라 하였다. 박지원이 죽은 뒤인 1824년 어떤 사람이 평하길 이 집 생긴 모습이 그가 안의현감 때 머무르던 관아 정자와 똑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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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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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제생원과 연암의 말년 집터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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