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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문 남쪽, 서울역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염천교와 숭례문 사이에 강희맹의 집이 있었다. 인품과 학식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집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강희맹 집터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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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때 원자인 연산군은 돌도 되기 전에 심한 중병을 앓았다. 성종은 어린 연산군을 강희맹의 집으로 보내 돌보게 했다. 후덕한 집안 부인이 아이를 키우면 쾌차한다는 관습 때문이었다. 이후 어린 연산군은 여러 번 강희맹의 아내 안씨 부인에게 돌봄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연산군이 실 꾸러미를 삼킨 이야기다.

《연산군일기》를 보면 연산군은 그 유년 시절에 몹시 장난이 심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실 꾸러미를 목에 삼켜서 질식 직전에 이르렀는데 아무도 조치하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안씨 부인은 유모를 시켜 연산군을 잡게 하고 입에 손가락을 넣어 실 꾸러미를 꺼냈다. 죽음 직전에서 연산군을 구한 부인은 자신의 일을 불문에 부치라고 당부하기를 잊지 않았다. 시종들이 호되게 벌 받는 것을 걱정해서였으니 그 사려 깊음이 남달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연산군은 왕위에 오른 이후에 폭정을 일삼기는 했으나 그래도 안씨 부인의 인품과 덕망을 흠모하여 자주 입에 올렸다고 한다. 모정이 사무치게 그리운 연산군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연산군이 강희맹의 집 앞을 지나다가 집 안의 노송을 보고 안씨 부인의 공덕을 기린다 하여 소나무에 정3품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한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 부근은 야동(冶洞)이라 불렸는데,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풀무간(대장간)들이 많아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곳에서 실학자 박지원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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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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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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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염천교 강희맹의 집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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