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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청계천 다리를 오가던 전기수

요약 테이블
관련 장소 청계천

1790년(정조 14년) 8월 10일 《정조실록》의 기사를 보면 당시 유명한 전기수(傳奇叟: 고전 소설을 직업적으로 낭독하던 사람)가 익명의 군중에게 살해당한 별난 사건이 기록돼 있다.

당시 《정조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사건을 다시 그려보자. 오늘날로 치면 종로에서 을지로 사이 약재상과 담배 가게가 밀집한 골목 공터에서 전기수 한 명이 대중들 앞에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배 가게 앞 전기수 주위로는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고 모두들 전기수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살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알고 보니 전기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던 청중 한 명이 나쁜 주인공을 응징한다며 들고 있던 낫으로 전기수를 죽인 것이다. 책 읽는 솜씨가 얼마나 뛰어나면 청중이 현실과 책 속 이야기를 혼동해 그만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렀을까? 당시 죽은 사람은 전기수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업복이다.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서얼 출신이라고 전해지는 것을 보아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은 양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천민이었을 것이다.

전기수는 뒷골목 상권을 형성하는 주역들이었다. 그들은 종로 뒷골목이나 청계천 주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읽어줬다. 《삼국지》나 《수호지》 등 긴박감이 감도는 인기 소설을 읽을 때면 많은 독자가 몰렸을 테고, 연암이 지은 《양반전》과 같은 풍자소설도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조수삼이 지은 <전기수(傳奇叟)>라는 글을 보면 당시 운종가 혹은 청계천 아래 여러 상점 주인이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손님을 모으던 광경이 묘사돼 있다.

전기수들은 한양 서쪽에서 광화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음 초이렛날(매달 초하룻날부터 헤아려 일곱째 되는 날)부터는 동대문 방향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한양 도심을 오르내리면서 청중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군중의 심리를 잘 파악해 책을 읽다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에 이르면 갑자기 읽는 것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면 청중들은 다음 대목이 궁금해 앞다투어 돈을 던졌다. 이때가 전기수에게 공식적인 수입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전기수들이 돈을 버는 절묘한 기술이라 하여 요전법(邀錢法)이라 불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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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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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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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청계천 다리를 오가던 전기수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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