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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숨어 지낼 운명을 지닌 바위, 대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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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북악산
저는 근래에 몸이 더욱 수척해져 뼈만 남아서 잠깐만 움직여도 곧 기진맥진하곤 합니다. 그리하여 책을 보고 글자를 쓸 때에도 종일토록 부지런히 할 수가 없으니, 자못 걱정스럽습니다. 이렇게 산다면 비록 백 년을 산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금년은 수재(水災) 때문에 백성들의 살아갈 길이 참으로 막막하니, 어떻게 구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또 숙헌이 저에게 《소학(小學)》 발문을 요청하였는데 사양할 수 없으므로 삼가 써서 먼저 좌전(座前)에 올리니, 수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문장은 본래 졸렬하여 다시 청할 것이 없으나 가르침을 바라는 까닭은 그 의논이 어떠한가 궁금해서일 뿐입니다. - 《우계집(牛溪集)》 속집 3권

1580년 7월 3일 우계 성혼이 구봉 송익필에게 보낸 편지다. 당시 실록을 보면 성혼은 편지를 쓰기 전날 사헌부 장령이란 벼슬을 제수받았다. 당시 대사간으로 있던 율곡 이이의 추천이었지만 그는 출사하지 않았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또한 동서 당쟁 갈등이 극심하던 시기라 정치 참여를 꺼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이와 같은 동네에서 살며 절친한 사이었던 성혼이 이처럼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편지를 보낸 송익필이란 인물은 누구일까?

북악산 동편

겸재 정선의 <백악부아암도>에 나오는 부아암이 보인다. 그 아래 있는 큰 바위가 대은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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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박지원이 젊은 날 오르내리던 대은암은 오늘날 종로구 궁정동 북악산 기슭에 있는 육상궁 북쪽의 큰 바위다. 그래서 청와대가 들어서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산 1번지 북악산 남쪽 기슭을 옛날에는 대은암동이라 불렀다. '대은(大隱)'이란 크게 숨어 있다는 뜻이다. 숨어 있다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바로 구봉 송익필이다.

이곳 대은암동에는 앞서 언급한 남곤뿐만 아니라 우의정을 지낸 안당 등도 터를 잡고 살았는데 특히 안당의 집터는 대은암동 중 가장 명당이어서 현인이 태어날 곳으로 꼽혔다. 송익필은 바로 안당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던 송사련의 아들이다. 송익필은 스스로 터득한 학문으로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 송강 정철 등과 교류하며 아주 친한 사이가 됐으며 서인의 막후 실력자로 성장한다. 훗날 이이가 구도장원(九度壯元: 과거에 아홉 번 장원으로 함격함)으로 유명해지자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와 비결을 물었는데 그때 자신의 실력은 구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이 송익필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였다.

송익필은 1534년 송사련의 4남 1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송사련은 안당 집안의 서출 출신 어머니에게 태어나 어린 시절 안씨 집안의 종처럼 지낸 인물이다. 1521년 안당의 아들 안처겸이 기묘사화로 득세한 남곤과 심정 등을 제거하기로 모의하였는데 이때 송사련은 서출이 종과 같은 신분이란 것에 불만을 품고 심정에게 아부하여 관상감판관이란 벼슬을 누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심정과 공모해 사림 세력을 다시 일으키려 했던 안처겸을 역모 혐의자로 몰아 죽게 했다.

이 사건으로 안당 일가는 10여 명이 처형당했다. 송사련은 안당의 재산 전부를 차지했으며 대은암동 집도 차지했다. 송익필은 아버지 송사련이 출세를 위해 외삼촌 안당 일가를 몰락시킬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1575년 송사련이 80세를 일기로 죽자 원한에 사무친 안당의 후손들은 송익필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당시 서인을 이끌던 정철과 대립하던 인물은 동인의 지도자로 떠오른 이발, 백유양 등이었다. 안당의 후손들은 이들과 손잡고 송익필과 친한 정철을 모함했다. 그리하여 정철이 왕의 신임을 잃은 사이 송익필 일가는 다시 안당 가문의 노비로 전락했다. 이때부터 송익필은 성과 이름을 바꾸고 전국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분이 풀리지 않은 안당의 후손들은 송사련의 묘소까지 찾아가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난도질한다.

천 리 먼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고 있는데 죽음이 아침저녁으로 있습니다. 정으로 보내주신 서찰 세 장은 죽기 직전에 갑자기 도착했습니다. 위로됨을 어찌 이루 말하겠습니까? 지난봄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러 가는 길에 밤에는 걷고 낮에는 쉬었는데 예측할 수 없는 칼날이 앞뒤로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한 번 글을 올릴까 하다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형께서는 마음속 말을 다하여 가르침을 주셨는데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만날 기약이 없으니 어찌 그 한스러운 마음이 형보다 작다 하겠습니까? …… 젊은 시절 저는 사귄 친구 많으나 혹은 문장으로 혹은 관직으로 사귀는 방법 각각 달랐습니다. 그러나 노둔한 성정을 채찍질하여 마음을 한가지로 하고 주위 환경이나 욕망에 빠지지도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율곡도 죽고 형은 세상에 홀로 버림받아 있으니 저는 아마 들판을 헤매다가 필경 어느 이름 모를 산에 뼈를 묻겠지요. …… 지금은 남쪽으로 내려와 두 다리가 너무 아파 굽혔다 펴지를 못합니다. 우환은 밖에서 들어오고 병은 속으로 파고드니 죽음이 나을 듯도 합니다. 다만 인간 세상 다소간 마치지 못한 일이 있으니 그것이 서러울 뿐입니다. - 《구봉집(龜峰集)》 5권

우계 성혼의 편지에 답장을 보낸 송익필, 편지 내용처럼 그는 숨어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1584년 율곡 이이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선조에게 송익필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궐에 들어선 송익필은 임금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다 겨우 선조의 거듭된 명을 듣고 고개를 들었는데 눈빛에서 뿜어 나오는 기(氣)가 너무나 사납고 위협적이라 선조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나중에 선조는 율곡에게 "그게 어디 사람의 눈빛인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압도할 정도였던 송익필은 동인과 서인이 대립하던 붕당정치의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하던 서인 세력의 뿌리였다. 식자들은 동인과 서인의 대립으로 일어난 기축옥사(1589년 정여립이 모반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이발과 백유양 등 동인 인사들이 대거 숙청된 사건)가 송익필과 정철의 합작품이라 믿고 있었다.

1752년 송익필은 충청감사 홍계희의 상소로 비로소 사헌부 지평이란 관직을 얻고 명예를 회복한다. 죽은 지 153년 만의 일이다. 송익필의 제자 김장생과 김장생의 제자 송시열 등 노론 세력이 오랫동안 조선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었으나 그의 벼슬 추증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 반노(叛奴: 상전을 배반한 종)의 신분이었던 송익필이 공자나 주자처럼 성인으로 추앙되던 김장생과 송시열의 학문적 스승이란 사실이 부각되는 게 사대부들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송익필이 성혼에게 편지를 띄울 때 머물던 곳은 지금의 당진군 송산면 매곡리에 있는 숨은골(隱谷)이란 마을이다. 그는 그곳에서 예순여섯 나이로 숨을 거둔다. 크게 숨어 있는 곳이란 뜻인 마을에서 태어난 송익필은 평생을 숨어 살다 결국 죽을 때도 숨은골에서 죽었다.

땅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사람치고 가장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사학자 문일평은 《근교산악사화(近郊山岳史話)》에서 "육상궁 부근에서 바라보면 백악 기슭에 거암(큰 바위)들이 겹겹이 둘러 있는 것을 볼 터이니 이것이 바로 남곤의 구기(舊基: 옛터)가 있는 대은암이다"라고 증언했지만 청와대 뒤편은 개방되지 않은 곳이니 확인할 길이 없다.

우계집(牛溪集)
조선 중기의 학자인 성혼(成渾)의 시문집. 12권 6책. 목판본.

구봉집(龜峰集)
조선 중기의 학자인 송익필(宋翼弼)의 시문집. 11권 5책.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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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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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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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2. 잠실나루 3. 뚝섬과 두모포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5. 마포 6. 양화나루와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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