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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혜화문

혜화문은 여진족 사신이 조선으로 입국하는 관문이다. 오랑캐들이 드나드는 문이니 중국 사신들이 드나들던 서쪽 영은문(무악재)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주변에는 북평관(오늘날 서울디자인지원센터 자리)이란 숙소도 있었다. 1528년 9월, 중종은 "야인(野人)들을 늘 동소문으로 왕래하게 하니 여염 사이 작은 길로 데리고 다녀 보기 불편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북평관 근처에는 궁궐에 우유를 공급하던 유우소(乳牛所)란 관청도 있었다. 그래서 궁궐에 타락(駝酪: 우유)을 공급하는 낙산을 타락산이라 불렀다. 《세종실록》 1438년 3월 20일자에는 "유우소 거우(車牛)의 반을 감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또 동부 학당(東部學堂)을 북평관(北平館)으로 만들고, 유우소를 동부 학당으로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유우소는 철종 대에 이르러 폐지된다.

동소문 안 숭교방(崇敎坊: 오늘날 명륜동과 혜화동 일부) 부근에는 고급 관리를 양성하는 국가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들어섰다. 성균관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있어서 매년 5월 11일과 9월 28일 두 차례 석전제를 올린다. 대성전을 비롯해 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明倫堂)·동재(東齋)·서재(西齋)·양현고(養賢庫)와 도서관인 존경각(尊敬閣) 등의 건물이 완성되면서 성균관은 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성균관은 태학(太學)으로도 불리었으며, 중국 주나라 때 제후의 도읍에 설치한 학교의 명칭인 반궁(泮宮)으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유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 국가로부터 학전(學田)과 외거노비(外居奴婢) 등을 받았는데, 교육 경비로 쓰이는 전곡(錢穀)의 출납은 양현고에서 담당하였다.

유생은 당대의 학문·정치 현실에도 매우 민감하여 문묘종사(文廟從祀)나 정부의 불교 숭상 움직임에 대해 집단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권당(捲堂: 수업 거부) 또는 공관(空館: 동맹 휴학) 이라는 실력 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1742년(영조 18년) 3월 26일 영조는 사도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즈음, 성균관 반수교 위에 탕평비(蕩平碑)를 세운다. 이 비에는 《논어》 <위정> 편 14장이 새겨져 있다. '남과 두루 친하고 편당 짓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고 편당만 짓고 남과 두루 친하지 못한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생각이다.' 당파 갈등이 심하던 시대에 서로 갈려서 지내지 말고 어울려 지내라는 의미다. 당쟁의 희생자였던 사도세자를 떠올리면 그 의미가 더욱 새롭다.

성균관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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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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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 옆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이 하마비를 지날 때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했다. 왕이나 고관·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존경심의 표시로 세워두기도 했다. 말에서 내리는 것도 품계 따라 다르게 표시했다. 1품 이하는 궐문에서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에서 말을 내려야 한다고 돼 있다.

성균관에는 천연기념물 59호로 지정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1519년(중종 14년) 대사성 윤탁이 심은 것으로 동쪽 나무는 전쟁의 피해로 줄기가 일곱 개로 갈라졌는데 각각 본래 줄기 크기만큼 크게 자랐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 식물이라서 암나무에 은행 열매가 열리면 그 냄새가 지독해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는 데 무척 방해됐다고 한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마침내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성균관 앞 하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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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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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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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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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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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2. 잠실나루 3. 뚝섬과 두모포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5. 마포 6. 양화나루와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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