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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한양
의 기억을
걷다

인평대군의 우애를 기리다

요약 테이블
관련 장소 낙산

종로구 이화동과 동숭동, 창신동을 끼고 있고 동대문구 신설동과 성북구 보문동, 삼선동까지 미치는 해발 120미터에 불과한 낙산은 품이 참 넓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계곡물이 맑아, 이화정(梨花亭), 협간정(夾澗亭) 등의 유명 정자들이 들어섰던 명승지기도 하다.

한양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낙산은 풍광이 좋기로 유명하다. 조양루(朝陽樓)라 불린 효종의 잠저(潛邸: 왕세자가 아니었던 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용흥궁(龍興宮)이 있었고 이 집과 동서로 마주 보는 자리에는 인평대군이 살던 석양루(夕陽樓)가 있었다. 인평대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로,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가 의문사한 뒤 효종으로 등극한 봉림대군과 매우 우애가 깊었다.

효종과 인평대군의 우애는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현종 시절에는 인평대군의 아들들인 복창군 이정, 복선군 이남, 복평군 이연 등의 대궐 출입이 잦았고 우애 또한 변함없었다. 그러나 한 치 걸러 두 치가 인심인지 피보다 권력이 더 좋은 것인지, 남인이 실각하는 경신환국 때 숙종의 외숙인 김석주의 무고로 인평대군의 제사를 받들 이를 제외하곤 모두 사사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의 후손들은 번성하지 못하지만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인평대군의 7대손으로, 후사 없이 죽은 철종에 이어 즉위한 26대 임금 고종과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실제로는 인평대군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임금이 치욕을 당하니 신하로서 죽는 것이 마땅하건만
큰 칼 옆에 차고 여태까지 살아 있음은
어진 임금의 은덕으로 왕업이 다시 일어남을 보려 함이다

14세에 치욕스러운 병자호란을 겪어야 했던 인평대군이 남긴 시조다. 그 역시 형들에 이어 청나라의 볼모로 심양에 끌려가야 했지만 소현세자나 봉림대군에 비해 억류된 기간은 짧았다. 하지만 청에 드나든 횟수는 훨씬 많았다. 두 왕자는 귀국한 뒤 다시 청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인평대군은 조선의 사신으로 청나라를 자주 드나들었다. 특히 효종 7년(1656년) 사은사로 북경을 방문하고 돌아와 쓴 《연도기행(燕途紀行)》은 청나라를 오가며 겪은 일과 풍속, 경치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시서화에 모두 능했던 그는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으며 그가 남긴 작품은 희귀한 편으로 현재에도 가치가 매우 높다. 심양에 볼모로 가 있는 동안에는 청나라의 화가·문인들과도 활발히 교류하였고, 서양 문물도 많이 접했다. 그러나 만주족의 고향인 요동은 오랑캐의 땅이므로 중화와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인평대군치제문비

인평대군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고자 왕이 직접 지은 제문을 새겨놓은 비석으로 경기도 포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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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37세의 짧은 생을 살았던 인평대군은 늘 소현세자와 효종에게 신하로서 예를 다했다. 효종 사후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그의 삶을 잘 표현하는 단어인 충경(忠敬)이란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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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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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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