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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십 리 밖에 있는 왕십리
관련 장소 | 왕십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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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往十里)는 도성에서 10리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하여 답십리·왕십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 왕심리 혹은 왕십리벌이라고도 했다.
답십리동 부근 동적전(東籍田)은 임금이 친히 농사짓던 농장이다. 규모는 100결 정도로 추정되며 필분각(苾芬閣)이라는 관아를 두고 관리했다. 그리고 여기서 수확되는 곡물은 종묘 등에서 제를 올릴 때 제수용으로 쓰였다. 해마다 국왕은 직접 이곳까지 와서 경작하는 모습을 시범 보였다.
동적전에는 적전(籍田)의 곡식과 제사용 술·희생(犧牲) 등을 관리하던 전농시(典農寺)라는 관청이 있었다. 전농동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인근에 있던 제기동은 선농단을 만들어 왕이 친히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전농시 직장(종7품)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신숙주는 세조의 총애를 받고 한 시대를 좌우한 재상으로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다. 전농시에 종으로 있던 목효지도 세종 때 풍수지리로 길흉화복을 정확하게 점쳐 임금의 총애를 얻는다. 하지만 목효지는 세조의 쿠데타를 미리 예견한 죄로 계유정란 후 목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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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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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도성 십 리 밖에 있는 왕십리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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