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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관련 장소 | 청계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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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은 한양의 정신적 기둥인 북악산과 인왕산의 샘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다. 이 물이 한양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고 그들이 배설한 오물은 천변을 따라 청계천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 더러운 물은 다시 한강으로 흐른다.
깨끗한 물은 이렇게 인간을 거쳐 가며 더러워진다. 그 온갖 더러운 것이 모인 장소가 청계천 하류다. 그래서 조선 땅에서 부와 권력을 움켜쥔 사람들은 북악산이나 인왕산 주변의 정기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니 그곳에서 가난하게 산 선비의 한탄쯤은 남산 아래 청계천 주변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서민에겐 한낱 배부른 자의 엄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게 한양 사람의 오물 덩어리가 모두 모이다보니 청계천은 더럽고 냄새가 지독했다. 청계천에서 시작된 각종 역병들이 창궐해 이 병으로 죽은 자의 시체가 모인 곳이 사소문(소의문, 광희문, 혜화문, 창의문)이었다. 시체가 드나들던 시구문이 따로 있을 정도로 산 사람 만큼이나 많은 시체가 도성 안에서 뒹굴었다.
청계천은 가뭄이면 쓰레기가 쌓여 냄새가 진동했고 홍수가 나면 그 더러운 물이 범람했다. 이렇듯 골칫거리였던 청계천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임금은 영조다. 영조의 최대 치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이 청계천 정비 사업으로 구불구불했던 하천이 직선화되었다.
하지만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1950~1960년대 서울로서는 여전히 청계천이 아닌 그저 개천에 불과했다. 그래서 개천을 감추기 시작했다.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청계천에 있던 조선 시대 다리들도 사라졌다. 서울의 다리는 한강 위에 있는 다리들이지만 조선 시대의 다리는 한양을 남과 북으로 가르는 청계천 위에 있던 다리들이다.
근대화·산업화를 상징하며 차들이 질주하던 청계고가로는 2003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마침내 철거되었다. 그리고 청계천도 다시 도심 속 하천으로 꾸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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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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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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