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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집에 싸늘한 바람 불어 들고 빈 뜰에 흰 눈이 쌓이네. 근심스러운 내 마음과 저 등불은 이 밤 재가 다 되었네. - 김수항, <설야독좌(雪夜獨坐)>

눈 오는 밤 혼자 골똘하게 생각에 젖은 문곡 김수항의 모습이다. 김수항은 김상헌의 손자로 23세에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26세에 이조좌랑, 29세에 대사간, 34세에 대제학을 역임했다. 44세에는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52세에는 영의정에 제수된 인물이다.

당시 김수항은 한양의 서쪽 인왕산 아래에서, 송시열은 한양의 동쪽 낙산 아래에서 각기 남인과 대결하고 있었다. 김수항은 송시열이 가장 아끼는 인물이지만 후세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김수항은 할아버지의 기상을 닮아 옳고 그름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 뚜렷해 그것이 자주 당쟁의 불씨가 되곤 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남인은 흉당이라 가르쳤고, 소론은 사이비라며 옳지 않은 이들은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곡 김수항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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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론배척을 정치 이념으로 삼아 강경한 정치인의 길을 가던 김수항은 결국 남인의 반격으로 실각하고 유배지 진도에서 사약을 받았다. 그러나 김창집을 비롯한 그의 아들 여섯 명이 모두 잘돼 후기 안동 김씨의 벌열(閥列)을 이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때부터 그들을 따로 장동 김씨라 불렀다. 장동은 인왕산 아래 김수항의 후손들이 모인 세거지를 말한다.

장동 김씨는 정조 사후 김상헌의 후손인 김조순의 딸이 순조비(순원왕후)가 되면서부터 세도정치의 중심 가문이 되기도 한다. 그 후 60년 동안 정승과 판서를 독차지하면서 세도정치를 펼쳤는데, 이 집안에서만 정승이 열다섯 명(영의정 여덟 명, 좌의정 네 명, 우의정 세 명), 판서가 쉰 명 이상이 나오게 된다. 결국 세도정치로 소수 귀족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조선은 점차 개혁 의지를 상실하고 부패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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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출처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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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2. 잠실나루 3. 뚝섬과 두모포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5. 마포 6. 양화나루와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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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눈 오는 밤 홀로 앉아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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