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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억을
걷다
동대문 주막에서 죽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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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 외딴 주막을 홀로 찾아가니, 깊은 산중이라 사립문은 열어 둔 채 호젓하다. 새벽닭이 울 때 길을 물으려 하니 낙엽만이 팔랑이며 나를 쫓아온다.
권필의 <길가에서(途中)>란 시다. 쓸쓸함과 외로움, 적막감이 감돈다. 세상은 참을 수 없이 가볍기만 하다. 권필은 가슴에 품은 시 한 편을 발표한다.
궁궐의 버드나무(宮柳)는 푸르르고 꾀꼬리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는데, 온 성안의 벼슬아치들은 봄볕에 아양을 떨고 있구나. 조정에서는 태평의 즐거움을 함께 축하하는데, 그 누가 있어 바른말로 저들을 쫓아낼까? - <궁류시(宮柳詩)>
권필의 시 구절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궁궐의 버드나무(宮柳)'라는 글귀였다. 그것은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횡포를 자행하던 광해군의 처남 유희분과 유희발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당시 상황을 답답해하던 사람들은 권필의 시를 듣고 통쾌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주막 곳곳에서 불렀다.
이 시는 결국 광해군의 분노를 샀다. 결국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되어 의금부로 향하던 권필은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구용의 무덤에 들렀다가 무덤에 술을 한 잔 부은 뒤 발길을 돌렸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눈에 밟혔지만 그리움 가득한 마음을 접어야 했다. 광해군은 임금을 무시하는 부도(不道)한 죄가 매우 크다며 일일이 추문할 것을 지시했다. 의금부에서 권필은 사흘 동안 맞았다.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시성 권필은 결국 유배형을 받고 동대문 밖으로 실려 나왔다. 마차에 짐처럼 부려진 그의 몸은 걸레 같았다. 이미 소식을 듣고 나온 친구들이 마차 주변을 에워쌌다. 친구들이 그에게 달려왔지만 그 자리에 허균은 없었다. 허균은 부안에서 《홍길동전》을 쓰는 중이었다.
해남으로 귀양 가던 권필은 동대문 밖 주막에 머물렀다.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은 장독(杖毒)에는 막걸리가 최고라며 권필의 얼굴에 막걸리를 들이부었다. 그는 입을 벌려 한 모금도 땅에 흘리지 않고 다 받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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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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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동대문 주막에서 죽은 시인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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