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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기슭에서 꽃피운 위항문학
관련 장소 | 인왕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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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가 많기로 유명한 인왕산 기슭에는 중인 출신 지식인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이들은 경치가 수려한 인왕산 골짜기에 작고 초라하게나마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고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당시 중인들은 서리, 훈장, 술집 중노미(주막에서 시중드는 남자) 등 다양한 직업으로 활동했는데, 이들은 종래의 양반 중심 문예활동을 대신해 서민 문학을 꽃피웠다. 오늘날로 치면 문학 동호회를 만들어 직장 생활과 병행해가며 사대부에 필적한 교양을 쌓아나간 것인데, 이들 위항시인(委巷詩人)은 저마다 시사(詩社)라고 하는 시문학 동인(同人)을 만들어 문학적 교우 관계를 넓혀나가며 조선 중·후기에 위항문학(委巷文學)을 꽃피웠다.
필운대 옆에 꽃나무를 많이 심어 성안 사람들이 봄날 꽃구경하는 곳으로 먼저 여기를 꼽는다. 술병을 차고 와서 시를 짓는 사람들로 날마다 북적거린다. 흔히 여기서 짓는 시를 '필운대 풍월'이라 불렀다.
《한경지략(漢京識略)》의 명승 관련 글이다. 인왕산 옥계와 필운대는 수많은 시 동인 모임이 열렸다. 조선 순조 때의 시인이자 학자인 천수경(千壽慶)은 인왕산 옥류천(玉流泉) 송석(松石) 아래에다 송석원(松石園)이란 초가집을 마련하고 송석도인이라 자처하며 동인들을 모아 시를 읊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추사도 이곳을 자주 찾았는데 초가집 바위 위에 '松石園(송석원)'이란 글씨도 써준 바 있다. 아래 편지는 천수경이 옥계로 이사 오자, 친구 장혼이 그의 집에 놀러 가 부러운 마음에 쓴 편지다.
예전 내 나이 열예닐곱 때에 이곳에 놀러 오지 않은 날이 없었지. 바윗돌 하나 시냇물 하나도 모두 내 것이었고 골짜기 터럭까지도 모두 눈에 익었었지. 오며 가며 언제나 잊지 못해 시냇가 바위 위에다 몇 칸 집을 지으려 했었지. 그대는 젊은 나이로 세상에서 숨어 살 생각을 즐겨 나보다 먼저 좋은 곳을 골랐네그려. 내 평생 허덕이며 사느라고 이제껏 먹을 것 따라다니느라 겨를이 없었네. 싸리 울타리 서쪽에 남은 땅이 있으니 이제부턴 그대 가까이서 함께 살려네. 이다음에 새 오솔길을 마련하게 되면 구름 속에 누워서 솔방울과 밤톨로 배 불리세나.
이들은 모임 이름을 옥계시사(玉溪詩社)라 정하고 1년에 최소 열두 번은 만나 다음과 같은 시상으로 시를 쓰곤 했다고 한다.
1월: 한길에 나가 달 구경하며 다리 밟기(街橋步月)
2월: 높은 산에 올라가 꽃구경하기(登高賞華)
3월: 한강 정자에 나가 맑은 바람 쐬기(江淸遊)
4월: 성루에 올라가 초파일 등불 구경하기(城臺觀燈)
5월: 밤비에 더위 식히기(夜雨納凉)
6월: 시냇가에서 갓끈 씻기(臨流濯纓)
7월: 단풍 든 산기슭의 수계(楓麓修)
8월: 국화 핀 뜨락의 단란한 모임(菊園團會)
9월: 산속 절간에서의 그윽한 약속(山寺幽約)
10월: 눈 속에 마주 앉아 술 데우기(雪裏對炙)
11월: 매화나무 아래에서 술 항아리 열기(梅下開酌)
12월: 섣달 그믐날 밤새우기(臘寒守歲)
이 시대에는 필운대 등에서 짓는 시뿐만 아니라, 꽃구경하고 나서 이를 산문으로 기록하는 유행도 있었다. 정조 대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은 도성 안팎의 화원에서 노닐며 글을 여러 편 지었는데, 그가 필운대 부근의 조씨 화원을 감상하고 쓴 《조원기(曹園記)》를 보자.
계묘년(1783년) 3월 10일, 목유선과 필운대에서 꽃구경하기로 약속하였다. 저녁밥을 다 먹고 나서 가마를 타고 갔더니 목유선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필운대 앞 바위에 자리를 깔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얼마 있다가 목유선이 종자에게 술병을 들게 하여 이정운과 심규를 이끌고 사직단 뒤쪽으로 솔숲을 뚫고 왔다.
이처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며 많은 문학인의 창작욕을 자극하던 필운대는 임금에게도 특별한 곳이었다. 정조는 필운대에서 꽃구경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백단령(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 차려입은 사람은 모두 시 짓는 친구들이고 푸른 깃발 비스듬히 걸린 집은 바로 술집일세. 혼자 주렴 내리고 글 읽는 이는 누구 아들인가? 동궁에서 내일 아침에 또 조서를 내려야겠네. - 《홍재전서(弘齋全書)》
한경지략(漢京識略)
조선 시대 한성(漢城)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 책. 연대는 미상이며, 저자는 유득공의 아들 유본예로 추정되는 수헌거사(樹軒居士)다. 2권 2책. 필사본.
홍재전서(弘齋全書)
조선 시대 제22대 임금 정조의 어제(御製)를 모아 엮은 문집으로 정조 재위 당시부터 수차례 편찬 과정을 거쳐 출간했다. 184권 100책. 활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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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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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인왕산 기슭에서 꽃피운 위항문학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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