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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과 선바위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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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이 창의문 밖에 지은 삼계동 정자(三溪洞 亭子)는 당시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유명했다. 조선 시대에 삼계동이라 불리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지만 지금은 터널을 오가는 차량과 주위의 빼곡한 주택들에 가려 찾는 이가 드물다. 황현은 그의 저서 《매천야록》에서 "김흥근은 북문 밖 삼계동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경관이 서울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었다"라고 말하며 별장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대원군이 김흥근에게 별장을 팔라고 했으나 그가 듣지 않았다. 그러자 대원군은 아들 고종에게 이곳을 다녀오라 권한다. 고종이 다녀간 후 김흥근은 '임금이 와서 놀다 간 곳에 감히 신하가 살 수 없다'며 다시는 이 별장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별장은 대원군 소유가 되었다.
김흥근의 별장을 빼앗은 대원군은 이름을 석파정(石坡亭)으로 바꾸고 한양 제일의 정원으로 가꾸었다. '석파'란 정자 앞산이 모두 바위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호를 석파라 할 정도로 이 정자를 좋아했다. 정자 소유를 포기한 김흥근은 당시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대표하던 인물이다.
김흥근은 1825년(순조 25년) 30세의 나이로 문과에 올라 검열(檢閱, 정9품)로 벼슬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직위를 거쳐 1848년(헌종 14년)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권세를 믿고 방자한 행동을 일삼다 대간의 탄핵을 받고 전라도 광양에 유배당하는 곡절도 겪는다. 1848년 7월 25일, 그의 탄핵 상소가 들어오자 헌종은 마치 기다린 듯 "너희들이 이제야 비로소 알았는가? 처지가 숭현(崇顯)하고 은총이 융중(隆重)한 자로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실로 조정의 불행이다"라며 반기었다.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횡포에 시달려온 임금의 속 깊은 분노가 그 구절에 담겨 있다.
그의 유배는 곧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 조씨를 그늘로 한 풍양 조씨들이 세력을 떨침을 의미했다. 그러나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자 김흥근은 곧 한성부판윤에 복직한다(1849년 12월 26일). 그리고 이조판서와 좌의정을 거쳐 1852년(철종 3년) 1월 56세의 나이로 영의정에 올랐다. 하지만 정세가 심히 복잡하고 혼란해 3월에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 판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
1862년 민중 봉기가 지속되자 김흥근은 삼정(국가 재정의 근간을 이루는 전세, 군포, 환곡을 뜻함)을 다스리는 국정 최고 책임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고종이 즉위하고 대원군이 정권을 장악하자 김흥근은 명예직인 돈녕부사로 밀려나 은거하다가 1870년(고종 7년) 75세 나이로 숨졌다. 석파정 소유가 서로 바뀌던 순간은 두 사람 사이 권좌의 교체를 의미한 것이다.
창의문에서 돈의문까지 성곽은 인왕산 자락을 끼고 내려온다. 그런데 인왕산 중턱 선바위가 묘한 기운을 풍긴다. 바위는 검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며 까마귀들이 주변을 선회한다. 선바위는 성곽 바로 바깥이고 주변에는 무당들의 굿당들이 산재해 있다.
이 바위에는 정도전과 무학대사 사이의 일화가 전한다.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끼고 도성을 쌓길 원했고 정도전은 그 반대였다. 두 사람이 한창 논쟁하던 어느 겨울날 눈이 많이 왔는데 선바위 옆으로는 눈이 다 녹은 신기한 일이 태조에게 보고됐다. 태조는 눈이 녹은 곳과 녹지 않은 곳을 경계로 도성을 축성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래서 선바위가 성 바깥으로 놓이게 됐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이제 중은 선비들 책 짐이나 들어주게 됐다고 한탄했다.
인왕산 정상에서 성곽을 따라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선바위는 인왕산 동편과 서편 그 경계를 가르는 곳에 있다. 겨울철 해를 고스란히 받는 곳은 눈이 녹고 응달이 진 곳은 녹지 않는데 바위 주위에 그 경계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 것은 아닐까? 거대한 바위 두 개가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선(禪)'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는 무속 신앙이 깊어 오늘날 아이를 낳기 원하는 부인들이 찾아와서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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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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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석파정과 선바위에 얽힌 이야기 –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김용관,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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