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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아래 철옹성 흥인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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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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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에서 내려오다 만나는 문, 바로 동대문이라 불리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흥인지문은 1963년 보물 1호로 지정됐다.

도성의 사대문 가운데 2층 문루를 갖춘 곳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두 곳으로 문루에는 유사시 군사를 지키는 장수들이 머물 공간이 마련돼 있다. 현재 흥인지문은 1869년(고종 6년)에 다시 개축한 것인데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옹성(甕城)이 둘려 있다. 옹성이란 철옹산성(鐵甕山城)의 준말이다. 적을 막기 위해 성문 밖에 일정한 높이의 옹벽을 친 것을 말한다.

낙산 비탈에서 갑자기 지대가 푹 꺼진 지역에 문을 만들다보니 밑에다가 돌을 포개어 올리고 그 뒤에 성을 쌓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힘이 다른 곳보다 배는 더 들었다는 기록이 《태조실록》에 남아 있다.

흥인지문은 왕이 동교(東郊: 동대문 밖)에서 사냥할 때 오가던 길목에 있었다. 태종이 아버지 태조의 건원릉을 참배하기 위해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 큰비가 내려 종로에서 흥인지문까지 사람 출입이 막힌 적도 있다.

낙산에서 내려오는 길. 흥인지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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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불고 큰비가 내렸다. 전달에는 오래 가물고, 이달에는 음우(陰雨)가 연일 계속하였는데, 이날에는 아주 심하였다. 도성에 물이 넘쳐서 종루 동쪽에서부터 흥인지문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통행하지 못하였다. - 《태종실록》, 1410년 7월 17일
옹성이 둘러 있는 흥인지문(19세기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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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 동구릉 등 임금의 능이 대개 한양 동북쪽에 있으므로 임금의 장례 행렬도 동대문을 통해 갈 때가 많았다. 임금이 승하하고 임금의 시신이 담긴 어가가 동대문으로 나오면 곧바로 노제를 한 번 치렀는데, 노제가 끝나고 나면 도성에 남는 관리들은 향에 불을 붙이고 행렬을 따라가는 관리들은 다시 말에 올랐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편년체 사서.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사관들이 다양한 자료들을 모아 편찬했다. 1,893권 888책. 필사본·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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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집필자 소개

《월간축구》,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조선의 군주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월간중앙》과 《한경리쿠르트》 등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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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 저자김용관 | cp명인물과사상사 도서 소개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조선의 왕, 지식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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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2. 잠실나루 3. 뚝섬과 두모포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5. 마포 6. 양화나루와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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