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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순조의 마지막 희망
효명세자
익종순조와 왕비 안동 김씨 사이에 2남 3녀가 출생하였다. 장남은 효명세자이며, 부인은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이었고, 둘째 아들은 일찍 요절하였다. 명온공주·복온공주·덕온공주 세 딸을 두었으며, 후궁 숙의 박씨와의 사이에 영온옹주가 있었다. 순조는 즉위 직후에는 정순왕후의 눈치를 보았으며, 정순왕후 사후에는 장인 안동 김씨 김조순과 그 세력들에 둘러싸여 힘겨운 정치적 역정을 보내왔다. 이런 와중에서 순조는 전국적으로 암행어사를 파견해 민폐를 조사하도록 하거나, 군사권을 강화하기도 하였고, 자신을 지지해 줄 정치세력을 육성하고자 하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는 마지막 희망으로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도록 하였다. 효명세자의 처가가 풍양 조씨인 점을 주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외척인 풍양 조씨로 하여금 또 다른 외척인 안동 김씨를 견제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효명세자는 영특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와 관련해서 1811년에 발생한 홍경래 관련 일화가 전한다. 홍경래 난이 일어날 때 세자의 나이 겨우 4살이었는데, 한창 젖을 먹고 있다가 홍경래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젖을 놓고서 웃으며 말하였다.
“쾌하고 좋구려.”
이제 겨우 더듬거리며 말할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당황한 유모는 무엇 때문에 그러한지를 물으니, 대답하였다.
“도적이 벌써 잡혔으니, 어찌 쾌하고 좋지 않겠는가?”
이런 일로 인해서 효명세자는 어릴 적부터 영특하였다고 하며, 성장하면서는 사람들이 간혹 선왕들의 일을 언급하면서,
“아무 일과 아무 일 같은 것을 저하(邸下)께서도 할 수 있습니까?”
하면 번번이 말하기를,
“할 수 있다.”
하고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여하튼 순조는 효명세자에게 마지막으로 왕권의 강화를 위한 기대를 걸었다. 그리하여 순조 27년(1827)부터 대리청정을 맡겼다. 다만 중요한 인재의 등용이나 군사의 이동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은 순조가 직접 처결한다는 단서가 있기는 하였다. 대리청정을 시작한 효명세자는 순조의 기대에 부응이나 하듯이 안동 김씨 세력들을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대리청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월 21일 효명세자는 종묘와 경모궁 등에 나아가 예를 행하였는데 이때 전·현직 이조판서인 이희갑과 김재창·김이교 등이 예법을 실수한 것을 들어 이들의 녹봉을 감봉 처분한 적이 있었다. 이희갑 등은 모두 김조순 계열의 인물들이었다.
비록 녹봉의 감봉이지만 이전 같으면 없을 일이었다. 그리고 3월에는 우의정 심상규를 순조가 세자에 대한 대리청정을 명령하였을 때, 현직 정승으로서 이를 막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처벌하였다. 아울러 그는 후일 효명세자 사후에 4명의 간신으로 지목된 김노·이인부·홍기섭·김노경 등과 함께 처가 사람들을 불러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삼았다.
한편 효명세자는 자주 궁궐 밖으로 미행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북촌의 자하동에 이르렀는데, 이때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같이 나간 내시에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하였다. 내시는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입니다.”
이즈음 효명세자는 이미 그 목소리의 주인공 집에 가까이 당도하였을 때였다. 세자가 박규수의 집에 당도하여 문으로 들어가자 동행했던 무예별감이 말하였다.
“세자의 행차가 당도하고 있다.”
주변을 정리하고 사실을 알려주었다. 박규수는 세자의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해서는 서둘러 나가서 땅바닥에 엎드렸다.
“세자 저하께서 어인 일로 이 미추한 곳까지 행차하셨습니까?”
“네 잠시 궁궐을 나왔다가 낭랑한 목소리에 이끌려 이곳까지 왔노라.”
이렇게 서로 인사를 하고는 세자는 박규수에게 무슨 책을 읽는가 하고, 박규수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였다.
“내 마땅히 그대를 등용하리라.”
세자의 이 말에 감동받은 박규수는 연신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세자는 다시 박규수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박규수의 조부,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를 빼서 보기도 하였다.
날이 밝아오자 세자는 궁궐로 들어왔다. 그런데 밤새 세자가 박규수를 만났다는 소문이 서울에 퍼졌다. 박규수는 세자의 말을 상기하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런데 세자는 결국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대리청정을 시작한 지 3년 3개월 만인 순조 30년(1830) 5월 6일 22살의 나이로 일기를 마감하였다. 효명세자와 박규수의 약속은 효명세자의 부인인 신정왕후에 의해서 실현되었다. 그러나 순조가 바랬고 효명세자가 꿈꾸던 그런 모습 대신 세도가문들에 의한 전횡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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