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태조와 태종에 의해서 조선이 건국되고, 기초가 수립되었다면, 왕조의 기틀을 확립하고, 민족의 문화 수립에 가장 큰 공을 남긴 이가 바로 조선조 제4대 세종이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왕자였는데, 어려서부터 그 자질이 총명하고 너그럽고 어질었다. 또 학문을 좋아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므로 태종은 그를 사랑하였고, 또 장차 양위에 대한 촉망까지도 그에게 가져, 맏아들 양녕을 뒤로 하고 그를 세자로 봉하였으며, 마침내 그에게 보위를 물려주었다.

세종은 사사로이는 효와 우애를 다하였다. 부왕과 모후의 상중(喪中)에는 그 슬퍼함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케 하였고, 왕위에 있으면서도 형님들을 날마다 청하여 침식을 같이 하곤 하였다. 여러 방면에 걸쳐서 통하지 아니하는 바가 없었다. 정사를 두루 보살피는 한편, 여가를 내어 독서와 사색에 잠겨 잠시도 쉬지 않으며 무가치한 일과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전한다. 세종은 늘 이르기를

“나는 서적에 대해서 눈으로 한번 거친 것은 곧 잊지 않았다.”

하였으니, 총명함과 글을 좋아함은 천성이었다. 또 어느 때는

“나는 궁중에 있을 때 손을 거둔 채로 한가로이 앉아 있었던 적이 없었다.”

하고 말할 정도로 부지런하였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백 번씩을 채웠고, 《좌전》과 《초사》 같은 책은 또 백 번을 더 읽었다고 한다. 일찍이 몸이 불편할 때에도 글 읽기는 계속 되었으니, 병이 점차 심해지자 태종은 내시를 시켜 갑자기 책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다만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세종이 이를 천 번 이상을 읽었다고 하니, 가히 독서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인간성은 국사에 있어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신하를 대하되 예를 잃지 않았고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들의 곤란하고 어려운 생활에 깊은 관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이른바 백성을 본위로 한 왕도의 정치, 애휼의 정치를 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항상 구중궁궐에 처하여 백성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함을 탄식하곤 하였다.

자신의 부친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나 이후 왕위에 오른 후에도 피의 숙청을 계속했던 것과는 달리 세종은 문치로 다스렸다. 그리하여 세종 2년(1420)에는 자신의 학문과 정책에 대한 고문을 위해 집현전을 설치하였다. 집현전 관리는 처음에는 12명이었다가 후에 30명으로 증원되기도 하였다. 집현전 관리들은 고금의 일을 토론하며 아침 저녁으로 쉬지 않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이리하여 집현전에서 당대 내로라하는 문장가가 배출되어 인재를 많이 얻게 되었다.

집현전에서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야 끝나서 일관(日官)이 시간을 아뢴 연후에 나가게 하였고, 아침과 저녁에 밥을 먹을 때에는 내관으로 하여금 손님처럼 대하게 하였으니, 그 우대하는 뜻이 지극하였다. 집현전 관리들에 대한 세종의 관심도 남달랐다. 집현전 선비들이 날마다 번갈아 숙직을 하는데, 그들에 대한 사랑과 대접이 매우 융숭하였다. 어느 날 밤 이경쯤에 내시를 시켜 숙직하는 선비가 무엇을 하는지 엿보게 하였는데, 신숙주(申叔舟)가 바야흐로 촛불을 켜놓고 글을 읽고 있었다. 내시가 돌아와서 아뢰었다.

“서너 번이나 가서 보아도 글 읽기를 끝내지 않다가 닭이 울자 비로소 취침하였습니다.”

임금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서 담비 갖옷을 벗어 그가 잠이 깊이 들 때를 기다려 그 위에 덮어주게 하였다. 신숙주는 아침에 일어나서야 이 일을 알게 되었고, 선비들은 이 소문을 듣고 더욱 학문에 힘쓰게 되었다. 심지어 집현전 관리들에게는 일종의 안식년제와 같은 사가독서(賜家讀書)제도를 운영하였다. 그리하여 학문적으로 촉망되는 젊은 문신들을 선발해서 벼슬을 그만두고 각자 집에서 편히 있으면서 글 읽기에 마음을 전력하여 그 효과를 드러내도록 하였다. 세종의 이러한 업적을 기려 정인지(鄭麟趾)는 말하였다.

“실로 동방의 요순이다.”

평화로운 나라 안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은 어디를 가나 등이 따습고 배가 불러서,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참으로 ‘동방의 요순’이라 일컬음을 듣는 세종, 그는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인 동시에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늘 자기비판과 자아반성의 정신으로 백천 가지 유익하고 빛나는 위업을 이루어 길이 후세에까지 그 유산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그는 슬하에 자녀들도 많아, 아들 18형제에 딸 4형제를 두었으며 재위 32년 만인 향년 54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근호 집필자 소개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정치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출처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야기 조선왕조사 | 저자이근호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조선왕조 500년의 인물과 사건을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이야기 조선왕조사>.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식'으로 정리하면서 50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집현전의 설치이야기 조선왕조사, 이근호, 청아출판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