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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광해군
조선 제15대 왕, 光海君출생 | 157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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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41년 |
재위 | 1608년 2월~1623년 3월, 15년 1개월, 유배기간 18년 |
선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공빈 김씨이다. 의인왕후에게서 소생이 없이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난지 평양에서 서둘러 세자에 책봉되었다. 선조와 함께 의주로 가는 길에 영변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분조(分朝)를 위한 국사권섭의 권한을 위임받았다. 1608년 선조가 죽자 왕위에 오르고 이듬해 왕으로 책봉되었다. 광해군 4년(1612)에는 김직재의 무옥으로 1백여 인의 소북파를 처단하였으며, 1613년 조령에서 잡힌 박응서 등의 진술에 따라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 광해군 즉위년(1608) 선혜청을 두어 경기도에 대동법을 실시하고 광해군 3년(1611) 양전을 실시하여 경작지를 넓혀 재원을 확보하였다.
광해군 1년(1609)에는 일본과 임진왜란 후 중단되었던 외교를 재개하였다. 한편 병화로 소실된 서적의 간행에 노력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비어천가》, 《동국신속삼강행실》 등을 다시 간행하고 《국조보감》, 《선조실록》을 편찬하였으며, 적상산성에 사고를 설치하였다. 한편 허균의 《홍길동전》, 허준의 《동의보감》 등의 저술도 이때 나왔다. 그의 재위 15년간 대북파가 정권을 독점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서인 김류·이귀·김자점 등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광해군으로 강등되고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에 이배되었다. 인조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책략과 명분 때문에 혼군(昏君)으로 규정되었지만 실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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