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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조선
왕조사
금삼에 깃든 피가 불러온 화

갑자사화

甲子士禍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는 친정에서 사약을 받고 죽을 때, 그는 금삼자락을 찢어 입에서 나온 핏덩이를 받아가지고, 그의 어머니인 신씨(愼氏)에게 주었다.

“내 아들이 이 다음에 왕위에 오르거든 이것을 전하고 꼭 이 원통함을 풀어 달라더라고 전해주시오.”

하고 목숨을 거두었다. 신씨는 그것을 받아 고이 간직해두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연산군이 아직 어릴 때였으므로, 그런 사실을 알리가 없었던 그를 길러준 중종의 생모인 자순대비를 친어머니인 줄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성종과 왕대비도 이 일을 연산군이 알까 하여 일체 비밀에 부치게 했던 터이므로 연산군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가 폐위된 사실을 알고 어머니를 격상시키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즉위 초부터 이 문제를 거론한다면 정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연산군이 모를 리 없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묘를 능으로 격상시키는 수준에서 일단은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연산군 10년(1504)에 드디어 임사홍의 고변으로 이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예종과 성종의 사위이면서도 출세길이 좌절되었던 임사홍의 재기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임사홍은 연산군을 만난 자리에서 울면서 고하였다.

“폐비는 엄숙의·정숙의 두 사람의 참소로 사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 같은 꼴이었다. 평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이를 마무리할 기회만을 보고 있던 연산군은 기회는 잡고 먼저 선왕의 후궁이었던 엄숙의와 정숙의를 처벌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사약 회의에 참여했거나 또는 이를 힘써 간하지 못한 조정신하들은 물론, 앞서 무오사화에서 죽음을 면한 선비들까지도 협조자로 몰아 죽였다. 사약회의에 참석했던 신하로서 이미 죽은 한명회·정창손 등은 무덤을 파고 그 시신을 베었으며, 생존했던 윤필상·한치형·이극균·성준 등과 사림파의 잔존자들은 모두 극형을 당하였다. 그리고 연산군이 모친 윤씨를 다시 왕후로 추존 복위하려 할 때, 아무도 간하는 신하가 없었다. 오직 권달수와 이행이 죽음을 무릅쓰고 간쟁하였다.

“선왕에게 죄를 얻은 바 복위란 불가하옵니다.”

그러나 사리를 따질 리 없는 연산군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리 만무였다. 그는 대노하여 즉시 권달수의 목을 베고, 이행을 귀양보냈다.

연산군 10년(1504) 갑자(甲子)에 일어난 일이므로 이를 ‘갑자사화’라고 한다. 물론 이 사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죽음에서 발단된 것이지만, 그것은 한 계기이자, 도화선에 불과할 뿐, 좀 더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실상 그 이면에 다른 암류(暗流)가 흐르고 있었다. 연산군의 등극 이후 방종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말미암아 재정이 극도로 궁핍해지자, 연산군이 공신들의 사전과 노비까지 몰수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조신들이 궁중의 용도 절약을 간청하여 어느 정도의 제한을 가하려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궁중과 관아 사이에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연산군이 워낙 포악무도하게 충간의 입을 틀어막자, 이것을 호기로 삼아 궁중과 결탁하여 부중의 구세력(대개 훈구파)과 이론을 좋아하는 사림파의 잔존세력을 아울러 일소하고, 대신 정권을 잡으려는 일파가 나타났다. 그것은 즉 신수영과 함께 폐비의 사인에 관한 사실을 밀고하여 사화를 일으키게 한 임사홍의 무리였다. 앞서의 무오사화가 훈구세력과 사림세력 사이의 상호대립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 갑자사화는 궁중 중심의 일파와 구세력 일파와의 충돌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림들이 화를 당하면서 사화(士禍)의 하나로 불린다.

연산군과 폐비 신씨의 묘

조선 제10대왕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소.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사적 제3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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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집필자 소개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정치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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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조선왕조사
이야기 조선왕조사 | 저자이근호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조선왕조 500년의 인물과 사건을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이야기 조선왕조사>.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식'으로 정리하면서 50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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