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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문종의 즉위와 죽음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부왕의 법도를 그대로 준행하였으므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였다. 그러나 등극하자마자 이름모를 병으로 재위 1년 만에 승하하였다. 그도 생전에 나이 어린 세자를 생각하고 항상 걱정하였다. 한 번은 왕이 거처하는 편전에 잔치를 베풀고, 집현전의 여러 학사들을 불러들여 한자리에서 대작하는데, 주흥이 익어갈 무렵 문종은 학사들을 향하여,
“경들은 선왕이 신임하시던 신하요, 과인이 지주같이 의지하는 분들이오. 이제 내 수명이 오래지 못할 것 같아서 특히 경들에게 부탁하노니 장차 이 어린 세자를 잘 보호하여 주오.”
하고 친히 용상 앞에 내려와 앉아서 내시와 궁녀들이 가져온 음식상을 앞에 놓고, 이제 열두 살 난 세자의 등을 어루만지며 측은해하는 것이었다. 그 비감한 말씀을 들은 여러 신하들은 황공무지하여 몸 둘 바를 모르고 일제히 부복하였다. 그때 성삼문이 이마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전하께서 춘추 아직 왕성하옵신 터에, 이같은 처분은 당치 않으신 줄로 아뢰나이다. 또한 동궁께옵서는 총명과 예지를 겸비하시와 신 등의 보좌가 아니라도 성덕에 미흡함이 없으실 줄 믿사옵니다. 그러나 신 등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한 마땅히 심력을 다하와 죽기로써 보필하겠나이다.”
문종은 순간 그의 ‘죽기로써’ 하는 말에 선뜩 불길한 그 무엇이 느껴졌다. 그러나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으면서 세자를 향하여,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모두 나라의 기둥이니, 장차 너의 스승으로 받들고 어버이같이 섬기어라.”
하였다. 그리고 세자로 하여금 여러 신하들에게 공경의 뜻을 표하게 한 다음, 문종은 일어나 손수 차례대로 술을 부어 주었다.
“이 술은 특히 세자를 잘 보호해주겠다는 데 대하여 상으로 주는 술이니, 사양치 말고 들도록 하오.”
모두들 황공하여 감히 사양치 못하고 들었다. 주량이 적은 사람도 왕이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본래 좋은 술이었지만 수십 배씩을 마시고 보니 참석하였던 신하들은 대취하게 되었다. 어전임에도 불구하고 꾸벅꾸벅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지고들 하였는데, 얼마 뒤에 깨어 보니, 어느새 당직하러 나왔던 집현전에 눕혀져 있었고 저마다 호피와 어의가 덮여 있었다. 방 안에는 향기가 진동하고, 아까 어전에서 심부름하던 내시들이 차를 다려 놓고 연신 마시기를 권하므로 모두들 어리둥절하였다. 그때 내시 한 사람이 웃으며 말하였다.
“전하께서 대감네들이 대취하여 누우심을 보시자, 침전 문짝을 떼라 하시어 대감님들을 차례로 태워 직소로 내려보내게 하신 다음, 사모와 관복을 벗겨 눕히고, 손수 어의를 가져다 덮어 주신 것이오이다. 그리고 해갈을 시켜 드리라 하시옵기에 차를 다려 가져온 것이옵니다.”
내시의 이 말을 듣자, 신하들은 일시에 일어나서 모두 사모 관복을 정제하고 나서 임금 계신 곳을 향하여 재배하고 사은하였다. 그때 성삼문이 눈물을 흘리며 반론하였다.
“우리 이같이 망극한 성은을 입었으니, 후일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로 맹세합시다.”
나머지 사람들도 눈물어린 눈으로 일제히 응답하고 맹세하였다. 그 뒤 문종은 병세가 차츰 악화되어, 생전에 조정이나 튼튼히 해놓을 셈으로 정부를 개편하였다. 영의정에 황보인, 좌·우의정에는 김종서와 정분, 이판에 조극관, 예판에는 권자신, 병판에 민신(閔伸), 우찬성에 이직(李稷), 그 밖에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최항 등에게도 각각 직품을 주었다.
이윽고 문종은 스스로 임종이 다가왔음을 깨닫자, 삼정승과 육조판서 그리고 집현전의 여러 학사들을 모아 놓고, 승지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궤에 의지하여 앉아서 세자를 앞에 세운 다음, 여러 신하들에게 고명(顧命 : 임금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함)을 하였다.
“내 이제 덕이 적어서 선왕이 맡기신 이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경들과 영결하게 됨이 한스럽소. 그러나 내 해놓은 일 없이 가거니와, 잊지 못하는 것이 이 어린 세자요. 나는 이제 경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노니, 부디 저버리지 말고 힘써 보호하여 주기 바라오.”
말을 마치자, 눈물이 흘러 용포를 적셨다. 그는 다시 세자의 손을 잡고,
“몸을 조심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여러 신하들의 말을 잘 들어라.”
하였다. 그리고 혜빈 양씨와 딸 경혜공주를 불러오게 하여 거듭 세자를 부탁하였다. 서글픈 광경이었다. 모두가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면서,
“옥체를 보존하소서!”
하고 아뢰었지만, 천명은 어찌할 길이 없었다. 얼마 뒤에 승하하니 춘추 39세, 세자 남매의 망극 애통함은 한층 처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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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문종의 즉위와 죽음 –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근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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