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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단종
조선 6대왕, 端宗출생 | 14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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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57년 |
재위 | 1452년 5월~1455년 윤6월, 3년 2개월 |
아버지는 문종이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이다. 세종 30년(1448) 8세 때에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52년 5월에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경복궁 천추전에서 죽자 근정전에서 즉위하였다.
즉위에 즈음하여 나이가 어려 정치하는 일에 어두우니 모든 조처는 의정부와 육조가 서로 의논하여 시행할 것과 승정원은 왕명출납을 맡고 있으므로 신하들의 사사로운 일은 보고하지 말도록 교서를 내렸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이 측근에서 보좌하고 집현전 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신숙주·이개·유성원 등은 지난날 세종으로부터 보호를 부탁받았으므로 이들이 측근에서 협찬하였다.
단종 1년(1453) 10월에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이 정권을 빼앗고자 측근인 권람·한명회의 계책에 따라 무사를 거느리고 가서 김종서·황보인·민신 등을 죽였다. 이들의 죄명은 작은아버지인 안평대군을 추대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다는 것이다. 1455년 급박한 주변정세에 단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는, 상왕이 되어 수강궁으로 옮겨 살았다.
세조 2년(1456) 6월에 성삼문 등이 상왕을 복위시키려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왕도 이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세조 3년(1457) 6월에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해 9월에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작은아버지인 금성대군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0월에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다.
국외 | 시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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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투르크, 콘스탄티노플 함락 | 1453 | 계유정란(癸酉靖亂) 일어남 |
동로마제국이 멸망함 | 안평대군 사사 | |
이징옥의 난 | ||
《세종어제악보》 간행을 명함 | ||
1454 | 《고려사》 간행, 배포 | |
양성지, 《황극치평도》 찬진 | ||
《세종대왕실록》 163권 완성 | ||
철화분청 제작 | ||
문, 무관의 상복흉배(常服胸背) 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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