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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남이 ∙ 강순의 옥사
장군 남이(南怡)는 태종의 외손자로서, 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웅장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17세의 약관에 무과에 급제하여 스물이 넘어서부터는 이미 훌륭한 장수로서 여러 번 싸움터에 나가 큰 공을 세우곤 하였다.
백두산 돌은 칼 갈아 다하고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리,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
이 유명한 노래는 남이가 스물다섯 살에 북방의 야인족을 토평하고 돌아올 때 지은 것으로 그의 씩씩하고 웅장한 기상이 그대로 넘쳐흐르고 있다. 그는 혁혁한 전공으로 이듬해 스물여섯 살에는 드디어 국방의 최고 영직인 병조판서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한창 일할 나이인 스물여덟 살에, 그의 출세를 시기하는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역모죄로 몰리어 죽었다.
그가 이처럼 요절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요귀의 농간이 따랐다고 한다. 그가 아직 소년 시절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남이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이상한 요귀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누구집 비복인 듯한 사람이 함을 지고 가는데, 문득 바라보니 그 함 위에 요귀 한 마리가 올라앉아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남이의 눈에는 역력히 보였다. 괴이하게 여긴 남이는 그 함을 지고 가는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동행하였다. 어느덧 그 사람은 어느 큰 대가집 문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오던 남이는 그 집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필연 이 집에 큰 일이 나겠구나.”
생각하고 문 밖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때, 아니나 다를까, 집안에서는 갑자기 통곡소리가 구슬프게 흘러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분명 그 요귀의 장난이렷다!”
하고, 남이는 그 집 문 안으로 들어서며,
“이리 오너라.”
이윽고 아까 그 함을 지고 들어오던 청지기인 듯싶은 사람이 나와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다. 남이는 요귀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대충 하고 나서,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그 요귀를 쫓아내 드리리다.”
하고 자청하였다. 그러자 청지기는 매우 반가워하면서, 그 집 주인에게 말하여 남이를 집안으로 안내하게 되었다. 들어가 보니, 그 집은 김판서 대감 집인데 그 김대감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갑자기 무슨 병으로인지 숨이 넘어가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내외가 다 무엇입니까?”
하는 주인 대감의 말을 듣고, 남이는 서슴지 않고 그 색시 방으로 들어섰다. 보아하니 요귀는 죽어 넘어진 처녀의 가슴을 타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요귀는 남이를 보자,
“아이고, 무서운 장군님!”
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순간 처녀의 한숨소리와 함께 숨 돌리는 소리가 소생하여 눈을 뜨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집안 사람들은 모두 환성을 올렸다. 남이는 남의 처녀 방에 더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이내 사랑으로 나왔다. 그러자 색시 방에서는 또다시 요란한 곡성이 들려 나왔다. 이에 남이는 주인의 간곡한 청원으로 다시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아까의 그 요귀가 처녀의 머리 위에 타고 앉아 있었다. 처녀는 머리가 부서지는 것 같다고 울부짖다가 그만 죽어 넘어진 것이었다. 남이가 가까이 가자, 요귀는 문틈으로 빠져나가 도망하였다.
이렇게 서너 번, 남이는 처녀 방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이는 그 집에서 하루 이틀 묵는 동안에 처녀와 정이 들었고, 마침내 김대감 부처의 주선으로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다. 그때 처녀의 집에서는 유명한 사주쟁이를 청하여 남이의 사주를 보게 하였던 바,
“부귀는 가질 수 있겠으나, 요귀의 농간으로 30을 넘기기 어렵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김대감 부처는 지극히 섭섭히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혼례를 거행하게 되었다. 그 후 남이는 일취월장하여 출세를 거듭하여 스물여섯 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런데 당시의 임금인 예종은 워낙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26세의 젊은 남이가 병조판서로 있는 것을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던 차였다. 마침 남이의 출세를 시기하고 있던 소인 유자광이 참소하기를,
“병판 남이는 지금 상감이 나약하신 틈을 타서 역모를 계획하고 있나이다. 그 증거로 그가 야인족을 토평하고 돌아올 때 지은 글 가운데 ‘남아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이란 한 구절을 보아서도 알 수 있나이다.”
하며, ‘男兒二十 未平國’을 ‘未得國’이라 꾸며대어 일러바쳤던 것이다. 이 시는 남이가 함경도 강계에서 소란을 일으킨 야인족의 난리를 평정하고 지은 것인데 이에 예종은 대경대노하여 남이를 잡아들이라 하여 친국을 하면서
“네, 이놈! 무슨 일로 역적 모의를 하였느냐?”
물으니, 남이는 처음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나이다.”
하고 부인하였다. 그러나 워낙 고문이 대단하여 앞정강이 뼈가 부러져버리는지라 남이는 한탄하기를,
“내 살려 하였음은 장차 나라의 대사를 위하여 이 몸을 바치려 하였음인데, 이제 정강이가 부러진 병신으로 살아난들 무슨 소용이리오.”
하면서 역모 하였노라고 거짓 자백하였다. 그러자 예종은,
“네 누구와 더불어 모의하였느냐?”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때 남이는 서슴지 않고,
“저기 있는 저 영상과 함께 하였습니다.”
하고 엉뚱한 사람을 끌고 들어갔다. 그때 영의정 강순은 80세의 늙은이였는데 담박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그도 못이겨 모의하였노라고 자백하였다. 이윽고 참형을 받으러 형장으로 갈 때, 수레 위에서 강순은 말하였다.
“이놈아, 네가 죽으려거던 혼자나 죽지, 어찌하여 죄없는 나까지 끌고 들어갔느냐?”
그러자 남이는
“대감도 뱃심은 좋으십니다 그려. 낸들 죄가 있어 죽는 거요? 나의 무죄함을 대감은 잘 알면서도 일언반구의 조언이 없으니, 그래 일국의 영상으로 그게 체모가 서우? 나 같은 청춘도 말없이 죽으려는데, 대감은 그만큼 살았으면 그만이지 않소.”
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것이었다. 이 말에는 강순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리하여 남이는 원통하게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그의 부인은 남이가 처형되기 전에 이미 자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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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남이 ∙ 강순의 옥사 –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근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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