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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명재상
황희
구부, 黃喜조선조 5백 년간을 통틀어 으뜸가는 명재상이라 일컬어지는 방촌(厖村) 황희(黃喜)는 영의정으로 무려 30년 동안 세 임금을 연이어 섬기면서, 93세의 고령으로 죽을 때까지 나라 일을 위하여 진력하던 유명한 정치가였다. 그는 태종으로부터 세종, 문종에 이르는 3대를 내리 섬겼고, 나이 아흔 줄이 되어서도 오히려 기운이 정정하여 국사를 두루 보살폈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만큼 놀라운 천품을 타고났기에 웅대한 경륜과 치적을 남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천성이 온후하면서 관대하고 청렴결백하여, 언제나 사람을 대하되 거만하거나 화내지 않고 너그럽고 덕기가 넘쳐 흘렀으며, 일국의 수상으로 몇십 년을 지내면서도 그의 집에서는 조석 때마다 끼니거리가 떨어지곤 하여 조반석죽으로 지냈다.
그에 대한 일화는 재미있는 것이 많다. 어느 날 정청에서 물러난 황희는 그의 거실인 사랑채로 들어가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앉아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앞뜰에서 무엇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주렁주렁 열린 배나무에서 주먹만한 배가 후두둑 떨어지는 것이었다. 황희가 가만히 내다보고 있으려니까, 담장 밑 개구멍으로 동네 아이 두어 놈이 살금살금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때 황희는 안마당을 향하여,
“이리 오너라.”
하고 청지기(양반집의 수청방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잡일을 맡아보던 사람. 수청(守廳)이라고도 했다)를 불렀다. 그러자 개구멍으로 들어오던 아이들이 꽁무니가 빠져라 하고 도로 기어나가 달아나는 것이었다. 아마도 저희들을 부르는 호령 소리인 줄로만 알았던 모양이다. 이윽고 뜰 아래 대령한 청지기에게 황희는 분부를 내렸다.
“저 배나무 밑에 가보면 배가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니, 그걸 주어다가 이웃집 아무개와 아무개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여라.”
이 말을 들은 청지기가 의아한 눈초리로 황희를 우러러 보면서,
“분부대로 하오리다만, 그 녀석들이 매양 배를 따가려 울 밖에서 돌을 던지곤 하던 놈들이니 또 올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니까 황희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놈들이 오죽 배가 먹고 싶어 그러겠느냐? 어서 갖다 주고 오너라.”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배를 받아 먹은 그 아이들은 너무도 황송하였던지 그 후로는 다시 돌을 집어던지는 일이 없었다 하거니와, 황희는 동네 아이들에게까지 너그럽고 후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젊었을 때는 다소 거만하고 짓궂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던 그가 그토록 관대하고 인자한 군자가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가 청년시절 암행어사가 되어 평안도로 향하여 내려갈 때의 일이다. 송도 어느 산모퉁이를 돌아가다가 그는 마침 산비탈에서 소 두 마리를 몰고 밭을 갈고 있는 어떤 늙은 농부를 보았다. 그 농부는 검정소와 누렁소 두 마리에 쟁기를 물리고서 밭을 갈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소 모는 광경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던 황희는 이윽고 그 농부를 향하여 큰 소리로 불렀다.
“여보, 여보, 밭가는 늙은이, 날 좀 보오.”
그러자 소를 멈추게 하고 서서 이편을 바라보았다. 황희가 농부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이 몰고 있는 그 소 두 마리 중 어느 소가 더 낫소?”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쟁기를 세워 놓은 채 뛰어나오더니 황희 곁으로 가까이 와서 거의 들릴락말락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저기 저 검정소가 누렁소보다 좀 낫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황희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아니 여보, 그 한마디를 하려고 그래 여기까지 뛰어나왔소?”
그러자 농부는 낯빛을 고치면서,
“그게 무슨 말씀이오. 젊으신네란 할 수 없구려!”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황희는 지지 않고,
“아니 그럼 거기서 대답해도 좋을 말을 가지고 굳이 예까지 뛰어나와 귓속말을 할 게 무에 있소?”
하였다. 그러니까 농부는 팔을 내저으며,
“아니올시다. 그런게 아닙니다. 아무리 미물인 짐승이라 하더라도 잘못한단 말을 들으면 좋아할 리 있습니까?”
하였다.
“그럼 저 소들이 말을 알아듣는단 말씀이오?”
황희가 반문하자 노인은 더욱 정색을 하면서,
“아, 그야 알아 듣고 말굽쇼. 제가 이리야 하면 가고 워이워이 하면 서지 않습니까?”
하고 설명까지 했다. 황희는 그만 더 대꾸할 바를 몰랐다. 농부만큼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자기가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리하여 농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자신이 오만불손하였음을 수차례 사과한 다음 그 자리를 물러섰다. 그 뒤부터 황희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너그럽고 어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아들을 훈계하는 데 남긴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둘째 아들이 난봉을 부렸는데, 기생집에서 매일 밤 새우다시피 하여 가사를 돌보지 아니하였다. 황정승은 아들을 불러 여러 번 타일렀으나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매일 밤을 청루에서 새우곤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전날 밤도 둘째 아들은 역시 기생집에서 자고 느즈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황정승은 의관을 정제하고 문밖에 나가 둘째 아들에게 정중히 읍하고 나서 그를 맞아들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괴이하게 생각하여,
“아버지, 웬일이세요. 의관을 정제하시고 저를 맞으시니…….”
“응, 네가 아비의 말을 죽어라 안 들으니 너는 우리 집 사람이 아니다. 우리 집 사람이 아닌데 우리 집으로 들어오니 나그네가 아니냐. 나그네를 맞는 주인이 어찌 인사를 차리지 않겠느냐.”
둘째 아들은 입이 백이라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후부터 아들은 기생집 출입을 끊고 부지런히 학문에 열중하여 크게 출세하였다. 황희의 맏아들은 일찍부터 출세하여 벼슬이 참의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돈을 모아 살던 집을 새로 크게 짓고 낙성식을 하였다. 말이 낙성식이지 크게 잔치를 베푼 터라 그 자리에는 고관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잔치가 시작되려 할 때, 아버지 황정승이 돌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선비가 청렴하여 비 새는 집안에서 정사를 살펴도 나라 일이 잘 될는지 의문인데, 거처를 이다지 호화롭게 하고는 뇌물을 주고받음이 성행치 않았다 할 수 있느냐? 나는 이런 궁궐 같은 집에는 앉아 있기가 송구스럽구나.”
하고 음식도 들지 않고 물러가니, 아들은 낯빛이 변하였고 참석하였던 조정의 관리들도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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