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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조선
왕조사
왕조사
연산군
조선 제10대 왕, 燕山君출생 | 14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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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506년 |
재위 | 1494년 12월~1506년 9월, 11년 9개월 |
성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윤기견의 딸 폐비 윤씨이다. 1494년 12월에 성종의 승하와 함께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12년 동안 너무도 무도한 짓을 많이 하여 폐위되었고, 교동에 안치되어 있다가 그해 11월에 죽었다. 즉위 초에는 아직 전왕 성종의 치평 기운이 남아 있고, 또 인재와 사림이 성한 가운데 어느 정도의 질서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즉위 4년째부터는 드디어 패악한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통치기간 중 5~6년 동안에 두 차례나 큰 옥사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희생시키는 참극을 벌였다. 연산군 4년(1498)의 무오사화와 연산군 10년(1504)의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무오사화는 《성종실록》 편찬 때 그 사초 중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발견됨으로써, 이에 관련되었던 사림학자들이 많이 참화를 당한 사건이다. 갑자사화도 그 직접적인 구실은 생모 윤씨의 폐비 사건이 발단이었다. 연산군 12년(1506) 9월 성희안·박원종·유순정 등의 주동으로 연산군 폐출운동이 일어나고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이 옹립되니 이것이 곧 중종반정이었다.
국외 | 시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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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나관중, 《삼국지연의》 간행 | 1494 | 삼포에 거주하는 왜인의 경작지에 과세 |
이탈리아의 메디치가, 피렌체에서 축출 | 강목교정청(綱目校正廳) 재설치 | |
1495 | 종묘제도 제정 | |
《종묘조천의》 편찬 | ||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완성 | 1497 | 부산포에 거주하는 왜인의 불법 어로 통제 |
왜구, 녹도 침입 | ||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 | 1498 | 무오사화(戊午士禍) 일어남 |
상평창(常平倉)설치 : 물가조절 기관 | ||
호적식년(戶籍式年) 개정 | ||
스위스, 독일과 바젤화약 맺음 | 1499 | 여진족의 침입 잦아짐 |
춘추관, 《성종실록》 완성 | ||
《구급이해방(救急易解方)》 간행 | ||
티무르 제국 멸망 | 1500 | 비융사(備戎司) 설치 : 갑옷 제조처 |
1501 | 여진의 침입에 대비, 월강척후제 복구 | |
독일의 프리드리히3세, 비텐베르크대학 창립 | 1502 | 전라좌도 수군, 왜구 격퇴 |
명, 《대명회전》 완성 | 함경도에 사창 설치 | |
1504 | 갑자사화(甲子士禍) 일어남 | |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를 제헌왕후로 추존 | ||
비융사 혁파 | ||
원각사(圓覺寺) 폐지 | ||
성현, 《용재총화》 간행 | ||
1505 | 종학(宗學) 혁파 | |
장악원을 연방원으로 개칭 | ||
1506 | 도성 밖 금표(禁標)의 한계 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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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목차
제14대 선조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하다
성리학적 이상사회 건설을 위하여, 붕당의 분화
붕당을 원치 않던 이이
정여립 역모 사건과 기축옥사
7년전쟁, 임진왜란의 발발
전세를 바꾼 이순신과 수군의 활약
조명연합군의 활약과 행주대첩
강화 교섭과 정유재란
북인의 득세와 영창대군의 출생
제19대 숙종
탁남과 청남의 대립, 남인의 분기
서인의 집권, 경신환국
임술고변과 노∙소론의 분당
왕자의 출생과 기사환국
갑술환국과 장희빈의 최후
노론의 승리로 일단락된 논쟁, 회니시비
노론과의 정치타협, 정유독대와 대리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