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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운명적 만남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나이 겨우 열두 살 난 어린 단종이다. 그는 세상에 나온 지 이틀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여섯 살에 조모님을, 열 살에 조부 세종을 여의었고, 열두 살에 부왕마저 여의었으니, 참으로 기구하고 가련한 고아였다. 그러나 어리면서도 어린이답지 않게 의젓하고 슬기로웠으며, 언행이 침착하고 정중하여 그야말로 명군으로서의 바탕이 뚜렷하였다. 고명을 받은 대신들과 학사들은 일심으로 보필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딴 마음을 품고 있던 왕의 숙부 수양대군은 비밀리에 불측한 모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성품이 호방하고 용맹스러워, 여러 대군들 가운데서도 가장 범 같은 존재였다. 그는 은근히 후일에 대비하기 위하여 자기 집 문호를 개방하다시피 하고 전국적으로 책략가들이며 한량들, 특히 힘깨나 쓴다는 건달패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의 밑에는 차츰 지모 있는 사람들과 날고 기는 장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수양대군의 모임에 참여하여 시종 수족같이 일한 사람은 권람(權擥)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여 번번이 낙방하고, 사회에 대한 커다란 불평과 비관을 되씹으면서 수양대군의 사저에 문객처럼 드나들며 지내던 사람이다.
하루는 그에게 한 괴상하게 생긴 사나이가 찾아왔다. 기골이 장대하긴 하나 얼굴의 생김새가 이상하였고 게다가 눈이 사팔뜨기였다. 그는 권람에게 방금 수양대군이 사람을 모집하여 쓴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길이라 하면서,
“지금 임금은 어린데, 범 같은 대군들이 도사리고 있어 백성들의 소문이 자못 어지러운 이때에 큰 일을 꾀하시는 분네들이 어찌 이리 한가하시오. 들으니 수양대군은 웅위하시고 매우 용맹스럽다기에 내 뜻한 바 있어 찾아왔거니와, 우리 함께 그를 추대하고 대사를 도모하여 명성을 떨쳐 보지 않으시렵니까?”
하고 외양과는 딴판으로 유창하게 폐부를 찌르는 말을 쏟아 놓는 것이었다. 권람은 놀랍고 기쁘면서도, 한편 의심쩍어 시치미를 뚝 떼고 여러 모로 그의 속을 떠보았다. 그러나 조금도 수상쩍어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의 조리 있고 도도한 말로 보아 출중한 모사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권람은 기뻐하여 즉시 그를 수양대군에게 천거하였는데, 수양대군도 여러 모로 시험해 보니 과연 놀라운 지략을 품고 있는지라 크게 반기며,
“그대야말로 나의 자방(子房)이로다!”
하고 거두어 후대하였다. 자방이란 옛날 중국의 초한전(楚漢戰) 때, 한고조 유방을 도와 중원 천하를 통일케 한 유명한 모사 장량(張良)을 가리키는데, 그러면 이러한 장량에게 비유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게 한 그 주인공은 누구였던가? 그가 바로 한명회이며 후일 수양대군을 도와 일을 도모할 때, 생살부를 한손에 들고 마치 염라대왕처럼 원로 대신들과 쟁쟁한 선비들을 때려 죽인 장본인이다.
한명회는 잉태된 지 일곱 달 만에 태어나, 어려서는 사지가 완전치 못했는데, 차츰 장성하면서 체구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커지고, 또 지모가 남달리 뛰어났다. 그는 서른이 넘도록 총각으로 돌아다녔는데, 그것은 그의 환경이 불우한데다 생김새조차 괴이하여 남들이 기꺼이 사위를 삼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그가 영통사란 절에 들러 머무른 일이 있었다. 그때 늙은 중 한 사람이 그의 상을 훑어 보고 조용히 말하였다.
“당신의 머리 위에는 혁혁한 기운이 있어서, 뒤에 반드시 귀하게 되겠소. 그리고 명년에는 지기(知己)를 얻게 될 거요.”
이 말을 들은 한명회는 크게 기꺼워 하였다. 그는 하직하고 나와서, 내친 발걸음을 서울로 옮기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어떤 사람에게서 권람이 수양대군과 비밀스러운 모의를 하면서 모사와 장정들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곧장 권람을 찾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명회는 권람의 추천으로 수양대군의 인정을 받아 이내 심복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일등 모사가 되었다. 한 번은 안평대군 측에 쓸만한 무사들이 없음을 보고 수양대군에게 말하였다.
“세상에 변동이 있으면 문인으로서 대우를 받음은 쓸모가 없으니, 나으리는 모름지기 무사와 결탁하여 두소서.”
그러자 수양대군은 한명회에게 다시 그 방법을 물으니, 한명회는,
“이것은 가장 쉽습니다. 활쏘기 연습이란 명분으로 술과 안주를 많이 장만해서 매일 모화관(慕華館)과 훈련원으로 나가 활쏘기를 하고 나서, 무사들을 먹이면 모두 사귀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렇게 한명회는 수양대군 측의 일등 모사가였다. 한명회가 수양대군과 만난 후 홍달손 등 30여 명의 장사를 대군에게 천거하였고, 수양대군을 위하여 갖가지 모사를 다하다가 결국 대사를 이루어 일등공신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 뒤 그는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왕후로 삼아, 그가 권력을 휘두르던 30여 년간은 감히 그와 맞설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밖에 홍윤성이란 사람도 남다른 체력과 지모로 수양대군에게 발탁된 사람이다. 그는 본시 한미한 시골 농가의 태생으로, 과거를 보려고 서울에 올라왔다가 마침 강가의 정자에서 놀고 있는 수양대군의 눈에 띄어 불려 갔다. 그때 수양대군이 그에게 술과 음식을 권하자, 한 말 술과 열 근 고기를 먹고도 오히려 끄떡하지 않아 수양대군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앞서 세종과 문종의 고명을 받았던 신하들 가운데서도, 수양대군을 섬긴 정인지·신숙주·최항·김질 등도 수양대군의 거사에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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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운명적 만남 –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근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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