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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성종
조선 9대왕, 成宗출생 | 145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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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94년 |
재위 | 1469년 11월~1494년 12월, 25년 1개월 |
세조의 손자이고 덕종(세조의 큰아들)의 둘째 아들이다. 천품이 뛰어났으며 도량이 넓고 서예와 서화에도 능하여 특히 세조의 사랑을 받았다. 1469년에 예종이 죽고 그 아들이 아직 어려서, 정희대비가 대신들과 의논하여 그를 왕위에 계승하게 하였다. 7년간 정희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다가 1476년에 비로소 친정을 실시하였다. 성종 7년(1476) 공혜왕후가 아들이 없이 죽자 숙의 윤씨를 왕비로 삼았다. 그러나 윤씨는 원자(뒤의 연산군)를 낳고 왕의 총애가 두터워짐에 따라 여러 다른 빈을 투기하고 왕에게까지 불손해졌다. 이에 성종 10년(1479) 윤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성종 13년(1482)에 사사하였다. 이는 뒤에 갑자사화의 원인이 되었다.
성종 때에는 세조 때부터 편찬하여 오던 《경국대전》이 수차례 개정 끝에 성종 16년(1485)에 완성, 반포하였다. 이어 성종 23년(1492)에는 《대전속록》을 완성하여 통치의 전거가 되는 법제를 완비하였다.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김종직 일파의 신진사림세력을 등용하여 훈신과 사림 간의 세력 균형을 이루고 왕권을 안정시켰으며 조선 중기 이후 사림정치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또 홍문관을 확충하고 독서당을 설치하여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고 독서제술에 전념하게 하였다.
또 편찬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노사신 등의 《동국여지승람》, 서거정 등의 《동국통감》과 《삼국사절요》, 《동문선》, 강희맹 등의 《오례의》, 성현 등의 《악학궤범》 등 각종 서적을 간행하게 하여 문운을 진흥시켰다. 국방 대책에도 힘을 기울여 성종 10년(1479) 건주야인의 본거지를 정벌하였고, 성종 22년(1491)에는 함경도관찰사 허종을 도원수로 삼아 2만 4,000명의 군사로 두만강을 건너 ‘우디거’의 모든 부락을 정벌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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