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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갑술환국과 장희빈의 최후
인현왕후가 폐출되어 생활하는 동안 실각한 서인들은 그녀의 복위와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였다. 김춘택의 주도하에 추진된 이 모의는 다방면으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김춘택은 희빈 장씨의 오빠로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고 있던 장희재의 아내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물거품이 될 뻔하기도 하였다. 1694년 3월 23일 함이완이 김춘택 등이 은을 모아 궁중에 내통하면서 민씨를 복위시키고 정국을 바꾸려고 한다고 고변하였다. 이 일은 남인 측 우의정 민암이 주도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민암은 함이완과 일종의 거래가 있었다. 어쨌든 함이완의 고변으로 서인 측의 움직임이 탐지된 후 민암은 이를 기회로 하여 서인들을 일망타진하려고 옥사를 확대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전세가 역전되었다. 3월 26일 서인인 김인 등의 고변이 있었다. 김인 등의 고변서에서는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가 뇌물을 이용해 최숙원을 독살하려고 한다는 내용과 신천군수 윤희 등이 민암·오시복·목창명 등과 연결되어 역모를 꾀한다는 내용 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최숙원은 누구인가?
하루는 숙종이 울적한 심회를 참을 길이 없어 달 밝은 밤에 궐내를 잠행하다가 문득 어느 방 앞에 이르러 바라보니 밤이 깊었는데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엿보니 어느 나인이 홀로 앉아서 떡을 빚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니 매우 순박하고 단정해 보였다. 왕은 소리 없이 들어가, 그 나인의 등 뒤에서 한참 동안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나인은 뜻밖의 일이라, 소스라쳐서 몸을 단정히 하고 엎드려 아뢰었다.
“소비는 민중전의 시비옵니다. 내일이 중전마마의 탄신일이기에 옛날에 섬기던 정분을 잊지 못하와 보잘것없는 것이나마, 이것을 만들어서 밝은 날에 갖다 올리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숙종은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적이 가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알게 된 그녀가 후일 왕자를 출산하게 되니 그가 곧 뒤의 영조(英祖)의 어머니 되는 숙빈 최씨이다. 숙종은 최씨를 한방에 들여 희롱의 말로,
“짐이 너를 세워 중전으로 삼으리라.”
이렇게 분부하자 이 말에 상궁 최씨는 슬그머니 나가더니 몇 시간이 지나도록 되돌아오지 않았다. 숙종은 어이된 일인가 하고 영창을 열고 밖을 살피었다. 때는 삼동이라 찬바람이 문풍지를 드르릉 울렸고 눈까지 내리는 데 뜻밖에도 숙빈 최씨는 섬돌 아래에 부복하여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숙종은 놀랐다. 뛰어내려가 보니, 최씨의 몸이 눈 속에 묻혀서 싸늘하게 식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숙종은 시비들을 불러 더운 방으로 최씨를 눕히고 손발을 주무르기를 한참만에 겨우 소생이 되었다.
“무슨 까닭에 추운데 그렇게 부복하고 있었는가? 자진하여 목숨을 끊을 일이라도 있었더냐?”
최씨는 가냘픈 목소리로 떨면서 임금께 아뢰었다.
“상감마마께서 내리신 말씀은 진실로 천만부당한 분부이옵기로 몸 둘 곳을 몰라 대죄함이었나이다. 이제 민중전께서 폐비되시어 복죄 중이시온데, 소비가 그 자리에 앉는다 함은 소비가 민중전 마마를 거역하는 역적이 되는 것이옵니다. 아울러 민중전 마마의 시비였던 소비가 역시 죄를 짓고 있는 터이온데, 상감마마의 분부가 일시의 농담이라 하시더라도 도무지 가당치 않은 일인가 하옵니다. 도대체 첩으로서 아내를 삼지 못함은 대경대법에 기록된 일인 줄로 아옵니다.”
이런저런 일로 숙빈을 총애하던 숙종은 김인의 고변에서 장희재가 독살하려고 하였다는 말이 나와서인지는 모르지만 종전까지의 자세를 바꾸었다. 민암·민장도·이의징·오시복·목창명 등 남인들을 잡아다가 국문하는 한편 기사환국 이후 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되었던 서인들을 불러들였다. 이미 죽은 서인들은 복관하고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김수흥 등은 복관 조치되었고, 김진귀·남구만 등이 조정으로 들어왔다. 아울러 숙종은 앞서 폐출하였던 인현왕후를 다시 복위시키고 장희빈을 다시 후궁으로 강등시킨 후 대궐 한구석인 취선당으로 몰아냈다.
그 후 1699년 4월에 인현왕후는 심호의 딸을 간택하여 세자빈으로 삼고 함께 종묘로 나아가 참례하였다. 내전으로서 종묘에 참배하기는 인현황후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장희빈은 취선당에 쫓기어 불우한 날을 보냈지만, 이 동안이 인현왕후로서는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지난날의 감고당의 모든 고초를 젊은 날의 꿈으로 돌리고 진심으로 숙종을 섬기어 세자와 며느리를 돌보며, 중전으로서 만족한 생활을 하였다.
이렇게 화평한 날을 보내다가 1700년 가을에 별안간 병이 났다. 궁중 상하가 모두 황황한 가운데 내의와 여의들이 쓰는 여러 가지 약이 아무런 효험이 나타나지 않고 병세는 점점 위중해 갔다. 1701년 가을에 이르러서는 오랜 병에 시달려 옛날의 단아하던 모습은 전연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다. 스스로 마지막이 왔음을 안 중전은 궁녀들로 하여금 부축하여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물을 떠오게 하여 몸을 깨끗하게 하고 왕을 뵈옵기를 청하였다.
숙종이 놀라 들어오자 중전은 몸을 바르게 하고 말하기를,
“신첩이 성상의 두터우신 은혜를 입사와 복록이 극진하오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사오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사와 넓으신 은혜의 만분지일도 갚지 못하옵고 이 지경에 이르렀사오니 구천 아래에 눈을 감을 길이 없사옵니다. 다만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박명한 신첩을 생각지 마시옵고 백세를 안강하시어 국가에 무강한 복이 되게 하옵소서.”
이 말을 따라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서 세자와 숙빈 최씨에게도 간곡한 부탁의 유언을 남기고 후궁 비빈들과 좌우 시신들에게 고별을 한 다음 고요히 눈을 감으니, 춘추가 35세였다.
한편 취선당에 물러나서 생활하던 장희빈은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의 혈속인 세자가 문안을 드리러 가면 까닭없이 꾸짖고 때리기까지 하는 포악을 떨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중전의 화상을 그려 놓고 궁녀를 시켜 매일 세 번씩 화살을 쏘게 하였고, 화상의 종이가 찢어지면 비단으로 수의를 해 입혀서 시체라고 하여 연못 속에 던지는 등 온갖 짓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런 소문을 들은 숙종이 하루는 장희빈의 미심한 행동을 눈치채고 미행으로 희빈이 배설한 신당에 들어가 보았다. 신당 안에는 과연 민중전의 상이 걸려 있었고 화상의 눈은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단에는 여러 가지 울긋불긋한 색지들이 늘어져 있고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숙종이 안의 행색을 자세히 살펴보니 장희빈의 시녀들이 무엇인가 주문을 외면서 무수히 절을 하며 온갖 요망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에 당 안에는 요기가 서리고 찬바람이 도는 것이었다. 이 모양을 목격한 왕은 그만 노기가 충천하였다.
“네 이년들, 이것이 무슨 요망한 짓이냐? 누가 이런 짓을 시키더냐?”
숙종의 진노에 찬 호령에 소스라친 궁녀들은 그만 혼비백산,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왕은 당장에 기도드리던 궁녀와 시비들을 잡아내어 즉석에서 목을 베게 하고 아울러 비망기를 내렸다.
“장씨를 내치고 사약케 하라.”
숙종의 무서운 명령이 내리자, 후에 경종이 된 왕세자는 잘못한 죄는 크지만, 그래도 자신의 어머니이므로 창황망조하여 숙종이 평소에 거처하는 편전인 차비문에서 대죄하면서 드나드는 대신들을 붙들고,
“제발 우리 어머니 좀 살려주오.”
하면서 애걸하였다. 그러나 엄한 숙종의 기상에 눌린 신하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러자 이상진과 남구만·최석정 등 소론들은 세자의 갸륵한 그 효성에 감동되어 특별히 용서하기를 간청하였다.
“희빈도 또한 6년 동안이나 중궁의 자리에 계셨으니 백성의 어머니 되기는 일반이요, 또 그 위에 아드님까지 두신 처지도 소중하오니 사약만은 거두시옵소서.”
하는 것이 그들의 상소였다. 그러나 왕과 노론은 강경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결국 사약이 내려졌다. 그러나 장희빈은 약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 사약이라구? 나는 죽을 죄가 없다!”
장희빈은 끝내 거역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왕은 더욱 노하여 몸소 희빈의 처소에 이르러서 전좌하고,
“너희들은 듣거라, 만일 사약을 명대로 시행치 않는 날에는 먼저 너희들이 그 사약을 받으리라.”
시녀들에게 내리는 무서운 호통에 장희빈의 옆에 있던 시비들은 그만 몸을 떨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장희빈은 모든 것이 틀렸음을 깨닫고 체념의 빛을 보이며 애원하였다.
“일이 이리 되었으니 어명대로 죽겠나이다. 다만 마지막 소원이오니 저의 혈육인 세자나 한번 보고 죽게 하여 주소서.”
처음에는 숙종이 이를 거절하려 하였으나 다시 돌이켜 생각하니, 아무리 죽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모자의 정의이니 이것만은 어이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느껴, 특별히 세자를 부르라 하여 장희빈과 대면케 하였다. 어머니 앞으로 나온 세자는 눈물이 앞을 가려 몸 둘 곳을 몰랐다. 그 아들을 본 장희빈은 별안간에 뛰어 일어나 세자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귀신의 외침같은 목소리로,
“내가 기왕에 죽을 바에는 이가의 씨를 전하여 무엇하리오. 같이 죽자!”
이렇게 외치면서 세자의 하초를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이에 놀란 주위의 모든 신하, 시비들은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가로 세로 뛰기만 하였고, 숙종도 요악한 장희빈의 행동에 부들부들 떨며,
“저 요물을 한칼에 베지 못할까?”
하면서 대들보가 울리도록 호통을 쳤으나, 때는 이미 늦어 세자는 무참히도 기절을 하고 말았다. 여러 시녀들이 달려들어 간신히 희빈의 손을 떼어내고 희빈의 몸을 이끌었다.
“입을 벌려 사약을 넣어라! 천하의 요망된 것!”
숙종의 무서운 호령에 의하여 사약은 장희빈의 입에 부어졌다. 독한 약기운으로, 그만 마지막 발악할 길도 없었던지 잠시 후에 온갖 흉악을 떨던 장희빈의 명도 그만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누이를 위해 모해한 희빈의 오라비 장희재와 장희재의 첩인 숙정도 죄를 받아 모두 능지처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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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갑술환국과 장희빈의 최후 –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근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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