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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사
무학과 석왕사
태조가 젊었을 때, 우연히 안변읍을 지나게 되었는데 지금 석왕사 자리에 작은 암자 하나가 있었다. 태조는 그 암자 안으로 들어가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등에다 서까래 세 개를 나란히 짊어진 것을 보았고, 또 난데없이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져 보이기도 했다. 꿈을 깨고 난 태조가 매우 괴이하게 여기고 있는데, 마침 그 절 안에 글로 점을 치는 파자점(破字占)과 해몽을 잘하는 도승이 하나 있다는 말을 듣고 태조는 그를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다. 그곳에 가니 마침 먼저 온 손님 하나가 있어, 그가 평생 신수를 파자점으로 짚는데, 얼핏 ‘문(問)’ 자를 짚었다. 그러자 도승은 그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
“바른 대로 말하리까? ‘問’의 자형(宇形)은 입이 문 앞에 붙었으니, 하릴없는 걸인의 신수외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손님은 멍하니 앉았다가 한마디 탄식하는 말이,
“제기랄! 팔자 도망은 못 하겠군.”
하고 나가버렸다. 과연 그 손님은 다름아닌 걸인으로서, 신통한 점술이 있다 함을 듣고, 잠시 옷을 빌려 입고 와서 신분을 숨기고 점을 쳐 본 것인데, 그 중이 단박에 알아내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며 나간 것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태조는 이상히 여기면서 자기도 파자점을 쳐달라고 하고 ‘문(問)’ 자를 짚었다. 그 중은 다시 물끄러미 태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일어나 합장 배례하면서,
“‘問’ 자 형상은 왼쪽으로 보아도 인군 ‘군(君)’ 자요, 오른쪽으로 보아도 인군 군(君) 자이오니, 장차 군왕이 되실 신분이시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태조는 웃으면서,
“아니, 아까 그 사람이 짚은 ‘問’ 자와 똑같은 글자인데 해석하는 방법이 어찌 그리 다르오?”
하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그 중은,
“아니올시다. 하필 글자에만 달린 게 아니오라 묻는 사람의 기상에도 달렸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태조는
“그럼 파자는 대사의 마음대로 돌려댈 수 있는 것이려니와, 꿈은 각자의 심령으로 꾸는 것이니 당신 마음대로 풀지 못할 것이오. 간밤 꿈에 서까래 셋을 짊어졌고, 또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짐을 보았으니, 그 길흉이 어떤지 잘 해몽해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도승은 무릎을 탁 치면서,
“그러면 그렇지! 참 대몽이옵니다. 등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졌으니 반드시 임금 ‘왕(王)’ 자 형상이 분명하고, 꽃이 떨어졌으니 열매가 맺을 것이요, 거울이 깨어졌으니 어찌 소리가 없으리까? 조만간에 임금이 되실 징조이니 이야말로 대몽이옵니다.”
하고 해몽하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커다란 포부와 웅지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던 태조는, 그 중의 말이 십중팔구는 근사한지라, 심중으로 은근히 기뻐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무엇이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하고 부인하자 그 중은 다시 일어나 배례하면서,
“소승의 법명은 무학이라 하옵는 바, 비록 어리석으나 약간 법술이 있사와 오늘 귀인께서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하문(下問)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차마 속이지 못하겠으므로 사실대로 아뢰었사오니 의심 마시옵고 아무쪼록 대사를 성취하신 후에 이곳에 절 하나를 세우셔서 천세를 축수하는 원당을 삼게 해주옵소서.”
하고 간곡히 말하는 것이었다. 태조는 무학이 범상한 중이 아님을 알았으므로 끝내 사양할 필요가 없어서 엄숙하게 말하였다.
“진정 대사의 말과 같이 바라겠습니까만 만약 후일에 그렇게만 된다면 원당 하나쯤이야 문제되겠습니까?”
그 뒤 과연 태조가 조선을 창건하였으니, 무학의 파자와 해몽은 실로 신통한 것이었다. 태조는 즉위하자 곧 관원을 안변으로 보내어 무학과 만났던 곳에 절을 짓게 하고, 절 이름을 석왕사(釋王寺)라 하였다. 석왕사란 태조가 인군이 될 꿈을 해석하였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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