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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조선
왕조사

문종비 현덕왕후의 분노

문종은 일찍이 장가들어 빈궁으로 김씨와 봉씨가 있었으나 둘 다 과실이 있었으므로 폐위하고, 화산부원군 권전(權專)의 딸을 맞아 빈궁으로 삼았다. 빈궁 권씨는 정숙하고 총명한 여인으로 효성과 부덕이 아울러 미흡함이 없었다.

그런데 매우 약해서, 스물다섯 살에 두번째 아기의 생산을 간신히 마치고 나니 산후의 증세가 위중하였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줄 알자, 궁녀를 시켜 자전(慈殿 : 임금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과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를 모셔오게 하여 간곡하게 아들을 부탁하고 나서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바로 현덕왕후이며, 이때 난 아들이 단종이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의 장성하는 것을 지켜주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후일 세조는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기 직전 그 분노가 폭발하였다. 세조가 이미 단종을 없애려고 마음 먹은 날 밤이다. 그렇지 않아도 밤마다 꿈자리가 어지럽던 세조에게 그날 밤에는 뜻밖에 단종의 어머니 되는 현덕왕후 권씨가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띠고 세조를 향하여 꾸짖었다.

“너는 흉악한 성품과 표독한 심술로 내 아들의 왕위를 빼앗으니, 그것만으로도 날도둑이요 역적이거늘, 오히려 그것도 부족하여 시골로 쫓아내더니, 이제 또 목숨까지 앗아가려는구나. 네 나와 무슨 원수가 졌기에 이다지도 악착스러우냐? 너는 나의 아들을 죽이니, 나는 네 자식을 죽이겠다.”

그리고는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세조는 마음이 섬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미처 그 꿈이 깨기도 전에 동궁 내시가 달려와서 황급히 아뢰었다.

“동궁마마께서 낮잠을 주무시다가 가위에 눌리셔서 매우 위중하시나이다.”

이 말을 듣고난 세조가 급히 동궁에 행차하여 보니 이미 동궁의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 실로 약 한 첩 써볼 겨를도 없는 급변이었다.

세조는 대노하였다. 즉시 중전 윤씨에게 꿈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현덕왕후의 벌이라 단정한 그는 군사를 보내어 소릉을 파헤치라 명하였다. 소릉은 현덕왕후의 능침이다. 그런데 군사들이 소릉에 다다르자 인근 백성들이 몰려와 고하는 말이, 어젯 밤에 능에서 여자의 곡성이 진동하였다는 것이다. 모두 꺼림칙하게 여기며 일을 진행하는데, 괭이가 관에 닿게 되자 별안간 추악한 냄새가 풍기면서, 또 관이 철판같이 육중하고 단단해져 움직이지 않았다. 관원이 세조에게 이 사실을 고하자, 세조는 분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 관을 큰 도끼로 쪼개버려라.”

하고 분부하였다. 이에 관속들이 도끼를 들고 쪼개려 하자 관은 저절로 걸어 나왔다. 다시 불살라버리라는 영이 내리자,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서 불을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세조도 하는 수가 없어 그것을 강물에 던지라 명하였다.

강물에 던져진 관은 가라앉지 않고 빈 배처럼 둥실둥실 떠내려 갔다. 며칠을 그렇게 떠내려 가던 관은 마침내 양화 나루에 가 닿았다. 그때 세조의 행위를 개탄하던 어떤 농부 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밤중에 남몰래 관을 옮겨 강 기슭 양지바른 언덕 위에 묻었다. 후에 그 백성은 왕후가 현몽하여 길흉을 일러주었으므로 가세가 번창하였다.

그 후 40여 년 뒤 중종 때에 이르러 정암 조광조가 소릉을 회복하기를 건의하여 윤허를 얻었으나, 관의 종적을 알 수가 없어 관원을 보내어 강변을 수색케 하였다. 그러자 관원의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수고하는구나. 그러나 애쓰지 않아도 내일은 관 있는 곳을 알게 되리라.”

하였다. 관원이 황공하여 말할 바를 몰라 하다가 꿈에서 깨었는데, 그날 밤 왕후는 다시 관을 묻었던 농부의 꿈에 나타나서,

“네가 내일 관아에 찾아가서 나의 소재를 밝혀주라.”

하였다. 그 백성은 관원이 나와 관 찾는 것을 알면서도 의심이 나 주저하던 중이었다. 관을 건져다 묻은 때는 젊었었는데, 이제는 90여 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력이 왕성하여 얼굴은 마치 홍안소년과 같았다고 하며, 마침내 그는 관을 찾아주어 상금을 후히 받았다. 그때 왕후의 관을 파내니 칠 냄새가 오히려 향기롭고 조금도 부패한 곳이 없었다. 이에 성대한 예로써 문종의 능 동편에 장사지냈다. 본래 왕릉과 왕후의 능 사이에 큰 수풀이 가로막혀 있었으나 왕후의 능을 본 뒤부터는 그 숲의 나무가 저절로 말라버려 모두 없어졌으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릉

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 동구릉의 하나로 건원릉 동쪽에 있다. 경기 구리시 인창동, 사적 제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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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집필자 소개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정치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출처

이야기 조선왕조사
이야기 조선왕조사 | 저자이근호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조선왕조 500년의 인물과 사건을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이야기 조선왕조사>.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식'으로 정리하면서 50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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