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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앞 글자와 PK(player kill)의 앞 글자를 딴 합성어로, 인터넷상에서 다투다 실제 만나서 싸우는 행동을 뜻한다. 애초 현피는 폭력적인 온라인 게임 이용자 일부에게 통용되는 개인 간의 다툼이었다. 온라인 게임의 한 마니아는 "분신 같은 캐릭터가 다른 플레이어의 공격을 받아 죽는 것은 일부 '폐인'들에게는 실제 죽음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라며 "PK를 당하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모아놓은 각종 아이템과 장비를 잃어 현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2000년대 중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현피를 인증하는 문화가 생기면서 현피는 구경꾼 앞에서 벌이는 공적 결투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서울 지하철 강남역 부근에서 고교생 두 명이 군중 앞에서 벌인 싸움은 한국 최초의 현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싸움에는 현피를 부추긴 네티즌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신용태는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부 네티즌에게 이 공간에서 모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며 "네티즌들의 부추김까지 겹쳐져 현피 당사자들은 마치 검투사가 된 듯 구경꾼들 앞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현피를 주선하는 이른바 맞짱 카페가 발각되었다. 인터넷 카페 '찐따빵셔틀탈출구', 'FIGHT 클럽', '길거리 싸움' 등이 그런 경우다. 찐따는 '진짜 왕따'를 소리가 나는 대로 줄인 말이고, 빵 셔틀은 힘센 학생 강요로 빵을 사다 주는 약한 학생을 뜻하는 은어다. 찐따빵셔틀탈출구 운영자는 "맞기 싫은 놈, 싸움 잘하고 싶은 놈, 모두 환영이다"라며 "빵 셔틀, 찌질이, 찐따는 내게로 오라"고 홍보했다. 그는 공지문에 "돈을 걸고 싸워도 된다"며 싸움을 부추겼다. 2012년 3월 14일 광주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이들 맞짱 카페 7개를 폐쇄하고 싸움을 주선한 청소년 8명을 입건했는데, 맞짱 카페에 가입된 회원은 총 2,483명에 달했다. 전체 회원 가운데 72퍼센트(1,800명) 이상이 청소년으로, 중고생은 1,625명(65퍼센트), 초등학생은 175명(7퍼센트)이었다.
2013년에는 온라인 게임 중 말다툼을 벌이다 친구를 살해하려 한 고등학생도 등장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인 학교 친구와 같은 편이 되어 온라인 RPG 게임을 하다 상대팀에게 진 후 말다툼을 한 끝에 인근 초등학교 근처에서 만나자고 해 싸움을 벌였다. 미리 슈퍼마켓에 들러 흉기를 구입한 가해자는 "칼 가지고 왔냐. 찔러봐라"는 친구의 말에 격분해 흉기를 두 차례 휘둘렀고, 같이 나온 다른 친구가 말려 미수에 그쳤다.
한국 사회에 정치적 편 가르기와 진영 논리가 횡행하면서 정치적 이념 대립을 이유로 현피를 벌이려 한 사례도 있다. 2013년 5월 전두환을 '전땅크'라고 모욕했다며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끼리 말다툼을 벌이던 와중에 한 회원이 고려대 앞에서 현피를 제안했다가 무산되었다. 현피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잔혹해지는 이유에 대해 하지현은 "게임 캐릭터를 죽인다는 마음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잔인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터넷과 SNS로 인해 가상과 현실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세상이 현피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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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김봉규, 「'현피'와 '호접몽'」, 『영남일보』, 2013년 7월 26일.
- ・ 이근평, 「'현피'란? '현실에서의 Player Killing'…2006년 고교생 싸움이 시초」, 『문화일보』, 2013년 7월 24일.
- ・ 이상준, 「돈 걸고 현피…직접 싸움 주선하기도: 청소년 맞짱 카페 7곳 폐쇄·운영자 등 8명 입건 파문」, 『한국일보』, 2012년 3월 16일.
- ・ 이보람, 「"게임 못한다" 핀잔 준 친구에 칼부림 '살인 미수' 고교생 소년부 송치」, 『세계일보』, 2013년 10월 22일.
- ・ 서상범, 「게임·이념 갈등…'위험한 현피(현실+플레이어킬)'」, 『헤럴드경제』, 2013년 7월 18일.
- ・ 김형원·김정환, 「익명성이 증오심 증폭시켜…폭력을 마치 게임처럼 생각」, 『조선일보』, 2013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