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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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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대학
메이지 시대의 대학과 다이쇼 시대의 대학은 출세의 등용문으로 각광을 받았으나 쇼와 시대 초기에 이르러서는 실업자가 속출함으로써 출세의 문이 좁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 자포자기에 빠지는 자, 스포츠에 뛰어들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 또는 사회 혁명 이론에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몰두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1928년(쇼와 3년) 3월 15일의 공산주의 탄압 사건 이후 대학에서도 이 방면에 대하여 연구하는 교수 · 조교수가 추방당하고 학생들의 사회과학연구회도 ‘빨갱이 집단’이라 하여 해산당했다. 사회과학은 가혹한 탄압을 받아 심지어 민중의 생활 문화를 연구하는 일본 민속학자까지도 ‘빨갱이’라고 주목하여 특별 고등경찰이 감시하는 형편이었다. ‘사회’라는 말만 들어도 금새 겁낼 정도로 그에 대한 연구를 좌익 운동에 결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래서 1932년(쇼와 7년)에는 이른바 좌익 연구자나 교원을 재교육시켜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서 적합한 인간으로 육성하기 위한 문부성 국민정신 문화연구원이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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