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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이에야스의 죽음
도요토미씨를 멸망시킨 이에야스는 이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은 도요토미씨를 멸망시킨 다음해였다.
이에야스는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이 못지 않게 원기가 왕성하여 그가 즐기는 매사냥 등으로 소일하다가 1616년 정월부터 병상에 눕더니 4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구노 산(久能山)에 안장되었고 다음해에 다시 닛코 산(日光山)으로 이장되었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동조대권현(東照大權現)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그 후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의 신으로 추앙되어 동조신군(東照神君), 권현양(權現樣)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닛코(日光)를 보기 전에는 훌륭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
이 말은 분명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화려하고 화사함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닛코의 토쇼 궁(東照宮)은 3대 쇼군 이에미쓰가 금 56만 8천 냥, 은 100관, 백미 1천 석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세운 이에야스의 재궁(齋宮)이었다.
제2대 쇼군 히데타다의 뒤를 이어 이에미쓰가 제3대 쇼군이 된 것은 그의 나이 20세 때의 일이었다. 이에미쓰 시대에 이르러 막부의 정치조직이 비로소 완비되어 다이묘를 엄격히 통제하는 규정이 새로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는 쇼군과 다이묘와의 관계는 이에야스와 히데요시의 관계처럼 주군과 부하라는 엄격한 구분이 없었다. 이에미쓰 때에 이르러 비로소 쇼군으로서의 권위가 확립되면서 다이묘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이에미쓰는 장군의 자리에 오르자 방계 다이묘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조부 이에야스와 아버지 히데타다는 일찍이 그대들과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그대들의 협력으로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대들을 손님으로 취급하여 에도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막부의 관리를 보내어 맞아들이고 또한 친히 나가 맞아들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쇼군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지금부터는 그대들을 직계 다이묘들과 똑같이 부하로 취급할 작정이다. 만약 여기에 불만이 있거든 3년간의 여유를 줄 터이니 영지로 돌아가 막부에게 도전하도록 하라. 그러면 미약하지만 이 이에미쓰가 상대해 주겠다.“
이것은 다이묘들에게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쇼군 이에미쓰를 중심으로 한 막부의 권력이 한층 강화되어 전국의 다이묘를 제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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