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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세계 경제 공황
대공황다나카 내각을 대신하여 입헌민정당(立憲民政黨)의 하마구치 오사치[濱口雄幸]가 내각을 조직하고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中郎]가 외무상이 되었다. 하마구치 내각은 출범 당시부터 일반 재정의 긴축 절약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다.
또 산업계에 대하여는 노동을 강화하고 숙련 노동자의 장시간 근무를 권장하고 금본위제를 부활하여 외국 시장에서의 거래를 촉진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뉴욕에서 일기 시작한 주식 대공황의 물결은 삽시간에 전세계에 파급되어 1929년에서 33년까지 세계 경제 공황이 계속되었다. 공업 생산은 감소하고 실업자가 점점 증가하였다. 특히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에서는 대금융 공황이 일어나 산업이 침체되고 노동자의 반 이상이 실업하는 사태에 있었다.
이 같은 경제 위기에 직면한 영국과 기타 제국들은 일제히 금본위제를 정지시켰다. 일본으로서는 모처럼 금의 수출을 해금하여 무역을 촉진시키려 하였으나 외국이 공황상태에 있었으므로 수출이 부진하고 무역이 저조하였다. 국내의 물가는 자꾸 떨어지고 잇따라 노동자의 실업사태가 발생하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들었던 여공들도 농촌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뿐만 아니라 생사의 수출 부진으로 누에고치 값이 떨어지고 쌀값마저 떨어져 농촌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도시로 나간 가족이 실업자가 되어 무일푼으로 귀향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농촌은 암담한 상태였다.
1931년 토호쿠 지방과 홋카이도에서 일찍이 없었던 혹독한 기근이 일어나 살길이 막힌 가장들이 살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딸까지 팔아야 하는 비참한 사태가 빈번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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