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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막부의 쇠퇴
오닌의 난이라는 거센 바람이 일본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후 약 100년 동안에 걸쳐 전국 시대[戰國時代]가 펼쳐진다. 이 시기의 특색은 이른바 하극상으로 전란이 전국적으로 확대됨과 아울러 새로운 실력자가 나타나 구질서와 구체제는 붕괴되고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시기였다.
오닌의 난이라는 대란을 겪은 이후 쇼군의 권력이나 권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들은 한 사람도 교토에서 편안한 일생을 마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세가 불안하였다.
요시마사의 아들로 제9대 쇼군이 된 요시히사는 교토와 가장 가까운 오미국에서 세력을 크게 떨쳐 막부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롯카쿠[六角高賴]를 정벌하여 막부의 권위를 세상에 과시하고자 출진하였으나 그 싸움이 미처 성공하기도 전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진중에서 죽고 말았다. 그의 유해는 교토로 운구되어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요시히사의 이 같은 죽음은 그 뒤를 이은 쇼군들과 비교하면 매우 행복한 것이었다.
요시히사의 뒤를 이어 제10대 쇼군이 된 요시타네[義稙]는 마사모토에 의해 쇼군의 자리에서 쫓겨났다가 한 차례 복귀하였으나 또다시 다카쿠니[細川高國]에게 아와지 섬(淡路島)으로 축출되어 아와(阿波)의 벽촌에서 일생을 마쳤다.
제11대 쇼군 요시즈미[義澄]는 마사모토에게 옹립되어 쇼군이 되긴 하였으나 다카쿠니 · 오우치[大內義興]에게 축출된 후 오미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32세의 생애를 마쳤다.
제12대 쇼군 요시하루[義晴]는 그를 옹립했던 다카쿠니가 실각한 후 아와이 미요시[三好元長]에 의해 오미로 추방되어 그 고장의 유력자에게 몸을 의탁하며 전전하다가 오미의 사카모토(坂本)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제13대 쇼군 요시테루[義輝]는 대낮에 마쓰나가[松永久秀] · 미요시[三好長逸] 등의 습격을 받아 격투 끝에 관통상을 입고 불타오르는 무로마치의 막부 처소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제14대 쇼군 요시히데[義榮]는 아와에서 마쓰나가에게 영입되어 쇼군이 되었으나, 재위 1년도 채 안 되어 요시테루의 동생 요시아키[義昭]를 쇼군으로 추대하고 교토로 들어온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추방되어 병사하고 말았다. 그때 그는 20세의 청년이었다.
제15대 쇼군 요시아키는 노부나가의 옹립으로 쇼군이 되었으나 그 후 노부나가와 대립하다 추방되어 유력한 다이묘를 찾아 제국을 편력하였다. 그러나 숙원을 이루지 못한 채 마침내 히데요시[秀吉]의 부하가 되었다가 오사카에서 죽었다.
이처럼 오닌의 난 후의 쇼군은 모두 쇼군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유력한 다이묘나 세력을 가진 무장들에 의해 옹립되었다가 추방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쇼군 가의 몰락과 함께 쇼군을 보좌하여 막부 내부에서 세력을 과시했던 관령 가(管領家)에도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시바 · 하타케야마 · 호소카와의 3관령 가 가운데 상속문제를 둘러싼 분쟁을 일으켜 오닌의 난의 기폭제가 되었던 시바 · 하타케야마 양가는 이미 막부 내에서의 세력이 약화되어 있었다.
한편 호소카와 가는 종가(宗家)를 중심으로 잘 단결하여 셋쓰 · 이즈미 · 단바 · 아와 · 사누키 · 빗츄의 슈고로서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특히 호소카와 가쓰모토의 아들 마사모토는 막부 제일의 권력자가 되어 1493년 당시의 쇼군 요시타네를 축출하고 호리코시 공방(堀越公方) 아시카가 마사토모의 아들 세이코[淸時]를 환속시켜 요시즈미라 이름하고 제11대 쇼군으로 옹립하였다.
무로마치 막부가 개설된 이래 쇼군이 암살당한 일은 있었으나 부하에 의해 쇼군이 추방되거나 옹립된 일은 없었다. 마사모토의 이 같은 쇼군의 교체야말로 하극상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후 호소카와 가에도 내분이 일어나 차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호소카와 가의 내분은 마사모토에게 친자식이 없는 것이 원인이었다. 처음엔 혈연과 관계가 없는 구죠[九條政基]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가 그 후 혈연을 의식한 나머지 호소카와 가에서 또 양자를 맞아들인 것이다. 구죠의 아들을 스미모토[澄之]라 이름하였는데 이 두 양자를 둘러싸고 호소카와 가도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호소카와 가가 분열되자 그의 가신들뿐만 아니라 평소 구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슈고 다이묘들도 가세하여 교토는 일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혼란의 와중에서 구죠는 스미유키 지지파의 가신들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그러나 스미유키는 스미모토에 의해 붕괴되고, 스미모토 또한 추고쿠 지방에서 강력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오우치의 후원을 받은 다카쿠니에게 쫓겨났다. 이렇게 해서 호소카와 가의 상속은 다카쿠니가 승계하기로 일단락되었다.
그 후 1549년 하루모토도 모토니 가의 아들 나가요시[長慶]에게 추방되어 복권(復權)의 날을 기다렸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15년 후인 1564년 그동안 교토의 정권을 제멋대로 휘둘렀던 미요시 나가요시가 죽자 그의 부하 마쓰나가 히사히데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교토를 제압하고 키나이(畿內) 유일의 실력자가 된 나가요시 밑에서 천하를 제멋대로 지배하고 있던 히사히데는 나가요시의 죽음으로 싸우지 않고도 실권을 장악한 행운아가 되었다.
중앙에서의 권력을 둘러싸고 교토를 무대로 되풀이되었던 싸움은 결국 그 실권이 쇼군에게서 관령 호소카와 종가로, 호소카와 종가에서 아와의 호소카와 가로, 아와의 호소카와 가에서 그의 가신인 미요시씨에게로, 다시 미요시씨에서 그의 부하 마쓰나가씨에게로 차례차례 아래로 넘어감으로써 하극상의 전형적 반복 형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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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무로마치 막부의 쇠퇴 – 이야기 일본사, 김희영,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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